- 부산문화재단 등 창작지원금
- 신진 예술인엔 아직 ‘그림의 떡’
-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텀블벅’
- 장르 차별·깐깐한 절차 없이
- 예술 콘텐츠 창작비 모금 가능
- 부산 활동 ‘버스트 오케스트라’
- 160명 팬 650만 원 후원 덕
- 2.5t중고 트럭·장비 마련
- 부산 연극 소식지 ‘파이플’도
- 160만 원 지원 바탕 5호 발간
2016년 겨울 광화문 촛불집회에서 울려 퍼진 ‘하야송’의 주인공 스카웨이커스는 부산의 집회 현장에서 이름을 날린 8인조 레게 밴드다. 집회 전선에서 드럼, 색소폰, 트럼펫으로 투쟁의 흥을 돋우고 행진 가도에서 노래를 부르며 참가자를 독려했다. 들판, 아스팔트, 공사 현장을 누비며 연주하는 이들은 어떤 환경에서도 적응하는 밴드지만 무대는 늘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몸집만 한 악기와 스피커, 마이크, 믹서 등 필수 장비도 펼치기 힘든 상황이 부지기수였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 스카웨이커스는 사정상 활동을 무기한 중단했다. 대신 일부 멤버 안병용(기타) 이준호(트롬본) 이광혁(드럼) 이종현(색소폰)은 부산 인디레이블 ‘루츠레코드’ 멤버들과 새로운 팀 ‘BUST Orchestra(버스트 오케스트라)’를 꾸리며 새로운 무대를 탄생시켰다. 언제 어디서든, 완벽한 무대를 선보이기 위해 ‘무대를 들고 다니자’고 마음먹은 것. 알록달록한 트럭 무대는 그렇게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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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10월 부산 서면에서 10·4선언 11주년 기념 평화트럭 페스티벌을 마치고 버스트 오케스트라 멤버들이 함께한 모습. 왼쪽부터 이종현 김주희 최동환 김기영 윤석현 이준호 안병용 서준오 이광혁 배보성. 버스트 오케스트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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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san Street Truck Orchestra·부산 거리의 트럭 오케스트라
2003년식 2.5t 중고 트럭과 장비를 마련하는 데 필요한 돈은 1500만 원. 멤버들의 사비 1000만 원을 긁어모아도 부족했다. 고민 끝에 팬들에게 후원을 받을 수 있는 ‘텀블벅’ 펀딩에 참가하기로 했다.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인 ‘텀블벅’에는 예술 문화 콘텐츠를 중심으로 창작자가 활동에 필요한 비용을 모금할 수 있게 장을 마련한다. 2010년 영화와 디자인을 전공하던 멤버 4명이 만든 텀블벅은 지난해 성공 프로젝트만 9000개, 누적 후원금은 550억 원을 넘겼다. 베스트셀러인 백세희 작가의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는 텀블벅 펀딩을 통한 독립출판의 성공 가능성을 입증한 사례다. 창작자가 프로젝트 소개와 목표액을 올리면, 작업 취지에 공감하는 팬들이 후원하고 관련 기념품과 창작물을 받는 식이다.
버스트 오케스트라는 지난해 11월 텀블벅에 합류했다. 목표액은 500만 원. 서울 중심의 음악 소비 시장에서 탈피해 로컬을 중심으로 지역 특색을 살린 부산 음악 씬 조성이 목표라고 밝히며 후원을 요청했다. 트럭이라는 기동성 있는 무대 장치를 이용한 작업 계획도 함께 소개했다. 160명의 후원자가 651만8000원을 모아주었다. 안병용 단장은 “자금이 부족한 상황에서 모금은 절대적인 힘이 됐다. 동시에 우리를 알릴 수 있었고, 큰 응원을 받았다”며 “‘BUST’는 ‘부수다’란 뜻도 있다. 합주 전 우리는 ‘차별과 혐오를 버스트, 평화와 통일로 부스트’를 외치며 인간성 회복을 위한 연주를 다짐한다. 후원이라는 직접적 매개를 통해 팬들이 우리의 목표에 공감해준 것 같아 더 기쁘다”고 말했다.
버스트 오케스트라가 텀블벅을 선택한 것은 부산문화재단의 ‘메세나 활성화 사업-시민 크라우드 펀딩’ 사업 덕도 컸다. 시민이 문화 예술에 참여하고 예술단체가 자발적으로 자금 조성하는 데 장려하기 위한 사업으로, 후원금에 일정 비율로 지원금을 매칭한다. 이들은 목표액 500만 원 모금에 성공해 문화재단에서 500만 원을 지원받았다. 안 단장은 “문화재단 지원금이 없었다면 시작하지 못했을 수 있다. 문화계 인프라를 키우는 다양한 형태의 지원금을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좋아서 만드는 연극 잡지, 파이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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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펀딩으로 탄생한 파이플 5호와 후원자에게 주는 기념품. 파이플 제공 |
많은 창작자에게 부산문화재단,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등에서 나오는 예술인 지원금은 절대적이다. 특히 영세한 단체나 1인 작업자에겐 이 돈이 제작비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어려운 환경에 놓인 예술인, 신진 예술인에겐 더욱 필요하지만 모순적인 진입장벽도 존재한다. 지원 자격으로 일정 기간 이상의 활동 실적 혹은 법인 설립 등을 요구하거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드는 까다로운 서류 작업을 병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공적 자금 지원인 만큼 필요한 절차라고 설명하지만, 실적 없는 신인이나 지나치게 까다로운 증빙 자료를 갖추기 어려운 예술인에겐 버거운 실정이다.
연극잡지 ‘파이플’은 그런 장벽에 부딪혀 ‘텀블벅’ 펀딩으로 제작 방식을 선회한 사례다. 2017년 11월 동아대 문예창작과 출신인 김정원(29) 씨와 친구들이 주축이 돼 제작한 ‘파이플’은 부산 연극 소식과 비평을 다루는 잡지다. 젊은 감각으로, 젊은 독자들이 부산 연극을 보다 친숙하게 여기길 바라는 마음으로 제작한다. 처음 잡지를 기획하고 세운 예산은 100만 원가량이었다. 텀블벅 펀딩으로 130만 원 모금을 시도했고, 160만 원을 후원받는 데 성공했다.
김정원 씨는 “대학 때부터 희곡과 시나리오에 관심을 두고 공부했다. 부산 연극이 잘되었으면 좋겠는데, 나아지지 못하는 데는 기록이 없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었다. 사회에 나와서 잡지 제작을 결심했고, 부산 연극이 젊은 관객의 관심으로 힘을 얻기를 원했다. 더 넓게 읽히길 바라는 마음으로 앞으로는 웹 공간으로도 확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1년에 세 차례 발간하는 파이플은 최근 5호를 냈다. 텀블벅에서 진행했던 기획전 ‘진화하는 잡지’에 소개돼 후원에도 도움을 받았다. 김 씨는 “펀딩 제작은 여러모로 만족스러운 방식이었다. 가장 큰 장점은 후원자들에게 잡지를 보내드리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독자가 생겼다는 점이다”고 후기를 전했다.
연초에 문화재단에 지원금 신청서를 제출하고, 심사위원의 심사를 거쳐 작업물을 만든 후 연말에 결산 자료를 내는 기존 방식에 얽매이지 않는 젊은 예술인이 늘고 있다. 장르와 수준도 발전하고 다양해질 뿐만 아니라 기존 틀의 제약을 받지 않는 자유로운 활동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플랫폼의 다양화는 예술인이 아닌 일반 시민의 예술 활동까지 가능케 한다. 여행 후 자신만의 에세이를 펴내거나, 자신의 그림이 인기를 얻으면 상품 제작까지 연결되는 식이다. 텀블벅에는 지금도 게임, 공연, 디자인, 만화, 미술 등 다양한 장르의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안세희 기자 ahnsh@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