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우리 인생의 드라마’가 1990년대를 지나 2000년대로 넘어가, 밀레니엄으로 입성했다. 20년 전 ‘밀레니엄’이라 불린 그 시기에 세기말 현상이 곳곳에 나타났던 것을 기억하는가. 근무하던 방송국에서는 온갖 예언자를 찾아다니며 세기말 특집 다큐멘터리를 방송했고 Y2K라는 버그의 공포로 컴퓨터 켜기도 두려운 날들이 이어졌다. 휴거, 심판, 종말론 등의 키워드 속에서 나 역시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오더라도 여행은 가고 죽어야겠다 싶어 1999년 12월 31일 시드니 하버브릿지에서 불꽃놀이를 보는 여행상품을 예약했으니….
그 2000년 직전 1999년 등장한 한 드라마가 있다. 옛날 드라마를 찾아 헤매는 온라인 탑골공원 마니아들에게 역대 초호화 캐스팅 드라마로 회자되는 ‘해피투게더’다. ‘모래시계’로 탄력받은 SBS가 ‘도시남녀’ ‘모델’등 드라마 왕국으로 거듭나던 시절, 야심 차게 기획한 드라마였다. 부산대 독문과를 나온 오종록 PD와 ‘내 마음을 뺏어 봐’의 배유미 작가 콤비의 작품이기도 했고.
캐스팅을 보자. 이병헌 전지현 송승헌 김하늘 차태현 한고은. 독수리 5남매에 버금가는 환상의 캐스팅이다. 한물간 야구선수지만 심성이 따뜻한 이병헌의 캐릭터는 사람 냄새 풍기며 극의 중심을 잡아줬고, 막 데뷔했던 고교생 전지현과 김하늘의 풋풋한 연기도 기억난다. 신부전증을 앓아 청순가련한 막내 연기가 딱이었던 전지현이 아빠가 같은 오빠 이병헌을 먼저 발견하고 주위를 맴돌다 서로를 알아본 뒤 동생을 업고 걷던 그 장면에서는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난다. 피 안 섞인 동생들과 한집에서 행복하게 사는 게 꿈이던 이병헌의 모습은 당시 세기말 공포를 견뎌내고 있던 현대인에게 포근한 집과 같은 따뜻함과 순수함을 보여줬고 가족을 다시금 생각하게 했다. 어찌 보면 2018년 칸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 ‘어느 가족’이 떠오른다. 이병헌을 코믹하면서 진중한 눈물 연기도 되는 연기파 배우로 각인시켰고, 오종록 사단 차기작 ‘피아노’도 탄생시킨 ‘해피투게더’. 연대와 상생, 지지와 격려라는 새로운 가족의 의미를 다시금 떠올리게 하는 내 인생의 드라마, 힘 내, 네 옆에는 언제나 네 편이 있어. 가족이라는 이름의.
경성대 글로컬문화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