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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 인간극장] <3> 전각 - 안정환 전각장

추사 전각 200년 계보 … 그의 손끝에서 전통이 새겨진다

  • 김민주 기자 min87@kookje.co.kr이우정 PD
  •  |   입력 : 2022-02-08 19:56:43
  •  |   본지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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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각 시조인 김정희 계보 전승
- 2015년 부산시 무형문화재 지정
- 금강공원·영락정 현판 등 제작

- 돌 등에 글·그림 새겨 깎는 전각
- 과거 임금 옥새 등 도장에 활용
- 전자서명 보편화 속 자취 감춰

- “바쁜 와중에도 이수자 된 장남
- 전통 계승의 뜻 헤아려줘 대견”

추사 김정희는 글과 서예에 능했다. 그의 글과 그림은 종이를 벗어난 곳에까지 새겨졌다. 추사는 당대 최고의 금석학자(금속성 재료에 새긴 금석문 연구)로 손꼽힌다. 청나라의 발전된 전각(篆刻·나무 돌 금옥 등에 문양·문자를 새기는 것)을 배워 조선에 전파했다.

시·서·화를 모두 통달했던 김정희는 선비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일례로 그가 사군자 가운데 난을 즐겨 그린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주로 대나무를 그리던 선비들 사이에 난을 치는 유행이 생겨날 정도였다. 추사에게 전각을 배운 제자들은 궁중은 물론 사대부들의 도장 새기는 일을 도맡았다. 추사가 전각의 시조로 일컬어지는 이유다. 조선 왕실 도서관인 장서각에서는 추사가 사용한 인장을 모아 낸 ‘완당인보’(阮堂印譜·완당은 김정희의 또 다른 호) 등 서책이 보관돼 있다.
안정환 전각장이 전각도를 이용해 도장을 새기고 있다. 이우정 PD
■ 추사 김정희의 후예

오늘날 전통기법으로 만든 전각 작품을 접할 기회가 매우 드물다. 얼마 남지 않은 전각 수요는 ‘도장집’이 맡고 있다. 보통 열쇠 깎는 일까지 겸하는 도장집에서도 기계를 이용해 도장을 팔 뿐 글자나 문양을 손수 새겨넣지는 않는다.

전각은 전각도(刀)를 이용해 나무 돌 동 철 옥처럼 단단한 물질에 글과 그림을 새겨넣는 작업이다. 문양 자체를 파내면 음각, 주변부를 파내고 문양을 도드라지게 하면 양각이 된다. 전각의 대표적인 사례는 임금이 사용하던 옥새다. 요즘은 수기나 전자서명이 보편화되면서 인감 도장의 쓰임새가 크게 줄었다.

부산시 무형문화재 24호 안정환 전각장.
부산시 무형문화재인 안정환(78) 전각장(篆刻匠)은 추사의 말예다. 추사의 계보는 그의 문우이자 역관이었던 이상적을 거쳐 이상적의 제자 오경석→오경석의 아들 오세창(3·1운동 민족대표 33명의 일원)으로 이어진다. 일제 강점기에는 징용을 피해 부산 범어사에 입적해있던 청사 안광석 선생이 오세창 선생의 제자가 돼 명맥을 잇는다. 서예와 전각에 재주가 빼어났던 청사 선생은 당시 범어사 주지 동산스님의 추천을 받아 오세창 선생의 문하로 들었다고 한다. 추사의 전각 기예가 200년 가까운 세월을 뛰어넘어 전승되고 있는 것이다.

안정환 전각장은 청사 선생의 슬하 6남매 가운데 셋째 아들이다. 일찍부터 부친으로부터 서예와 전각을 사사했다. 부산시는 2015년 안 전각장을 무형문화재로 지정하면서 전통 전각기예 외에 ‘전승계보가 명확하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취재진은 조선 전각의 적통을 이은 안 전각장을 최근 부산전통예술관 전수교육관에서 만났다.

“전각의 기본 토대는 서체와 서법입니다.” 안 전각장은 전각에서 서예가 지니는 중요성을 강조했다. 단순히 명필의 후예여서 그런 것은 아니다. 초·중생도 전각도나 조각칼을 가지고 목판·고무판에 문양을 새겨넣는 수업을 받는다. 이들이 새겨넣는 선은 굵기나 깊이가 일정하지 않고 비뚤다. 그는 “서예는 하나의 선을 일정하게 긋는 연습에서부터 시작된다. 실제 글을 써 선을 유지하는 감각을 체화해야 종이가 아닌 나무·금속에도 고른 선을 새겨넣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각의 기본이 바른 선 긋기인 셈.

■ ‘세한도’가 대표작

안정환 전각장의 대표작인 세한도.
전각 작업은 먼저 재료에 글·그림을 새긴 뒤 이를 깎아내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장시간의 집중력이 필요하다. 전각도를 쥔 손은 세밀하게 악력을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 안 전각장의 오른손 검지 손가락 첫째 마디는 육안으로 보기에도 도드라지게 툭 불거져 있다. 60년 가까이 붓과 전각도를 쥐어 온 세월이 그의 몸에 남긴 전각인 셈이다. 대표작을 묻자 안 전각장은 추사의 세한도(歲寒圖)를 옮겨 새긴 ‘세한도’를 꼽았다. 길이 1.8m에 폭 45㎝인 참나무 위에 옮겨진 작품이다. 추사가 제주도에 유배돼 있을 때 남긴 그림과 글 원작이 모태다.

그는 보통 붓 이외에도 삼나무나 대나무로 직접 만든 붓을 사용한다. 붓모를 따로 붙이는 대신 나뭇가지를 여러 번 찌고 앞부분을 촘촘하게 잘라 만든 것이다. 안 전각장은 “추사는 유배지에서 붓을 구할 수 없어 나무로 붓을 만들어 썼다”며 이를 본따 붓을 만든 것이라고 했다. 이 붓으로 화선지 위에 용(龍)자를 쓰자 투박하면서도 삐침획이 나뭇결을 따라 독특하게 갈라지며 생동감 있게 꿈틀대는 ‘선’이 나타났다.

삼나무 붓으로 한지 위에 용(龍) 자를 쓰고 있는 모습.
안 전각장의 작품은 부산의 주요 유적지에서 만날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2005년 작업한 동래구 금강공원 현판이다. 수입 알마시카목에 길이 5m, 폭 1.5m 규격으로 제작했다. 목재 값만 300만 원, 제작에는 6개월이 걸린 대작이었지만 당시 금강공원 관리 봉사단체 일원이었던 그는 현판 제작에 따른 보수를 따로 받지 않았다. “선대로부터 내려온 전각을 배워 익혀 지금은 부산시 무형문화재로 지정됐잖아요. 쓰임새가 있는 일에는 마땅히 응해야 합니다.” 영락공원 영락정 현판과 어린이대공원 성지곡수원지 성지교·백양교 휘호도 그의 작품이다.

안 전각장의 제자는 7명. 그 가운데 장남인 현준 씨가 이수자로 이름을 올렸다. 이수자는 장인의 제자로 5년을 배운 뒤 문화재청이나 자치단체의 심사를 거쳐 받게 되는 배분이다. 대기업에 다니는 아들은 시간을 내 아버지로부터 서예와 전각을 배워 익히고 있다. 안 전각장은 “나도 부친으로부터 서예와 전각을 배웠다. 대를 이어 전각의 전통을 물려주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던 게 사실”이라며 “다만 예술가는 늘 배고픈 직업이어서 강요할 수는 없다. 내 마음을 헤아려 나서준 아들이 늘 대견하다”고 말했다.

※ 제작지원 B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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