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삶과 밀접한 화학 이해 높인 책
- ‘신의 약’ 항생제 개발 유익한 힘
- 약물 탈리도마이드 부작용 사태
- 무시무시한 역기능도 함께 다뤄
- 사회적 책임과 검증 중요성 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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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오하이오주 오틀리에 설치된 무수 암모니아 탱크들은 화학이 가진 두 얼굴을 보여준다. 무수 암모니아는 식량 증산에 도움을 주는 질소 비료의 원료이지만 마약인 메스암페타민(METH)으로 악용되기도 한다. 탱크 표면에 ‘메스암페타민 반대’라는 구호가 적혔다. |
‘무슨 내용일까?’. 저자가 누군지 모른다면, 서명(書名)만 봐선 어떤 책인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저자는 1981년 노벨화학상을 공동 수상한 과학자이면서 등단한 시인. 다시 말해, 이 고전은 화학책이다. 제목이 과학 도서 같지 않은데, 이 책을 읽어 보면 아주 화학다운 제목임을 알게 된다. 예를 들자면, 동위원소로 만들어진 분자들은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다. 이 고전(1995년)은 대중에 퍼진 화학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고 이해를 높여준다. “화학을 잘 이해하면 우리 삶과 몸에 이롭다.”
아울러 화학에 대한 지식이 절로 는다. 1부 8장(‘똑같은 분자도 있을까?’)은 물을 다뤘다. 원자를 기준으로 볼 때, 물(H₂O)은 1종류가 아니다. 우선, 구성 원소인 수소(H)가 3종류다. 수소 동위원소(원자핵 속 양성자 수는 같지만, 중성자 수는 다른 원소)가 3종류여서 그렇다. ‘수소(¹H)’ ‘중수소(²H)’ ‘삼중수소(³H)’. 산소(O) 역시 동위원소가 3종류(
¹⁶O ¹⁷O ¹⁸O)다. 수소와 산소 종류가 이렇게 다양하니 지구상 물은 모두 18종류.
물은
¹H₂¹⁶O 형태가 99.8%로 가장 흔하다. 방사성인 삼중수소가 들어간 물(
³H₂¹⁷O)이 제일 적다. 삼중수소는 스스로 붕괴하지만 방사성 물질이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가 바로 이 물이다. 일본 정부가 이 오염수를 해양에 방류하는 걸 용인할 수가 없다. 저자는 “
³H₂¹⁷O를 마시면 건강에 좋지 않은 건 화학적 이유에서가 아니라 삼중수소가 가진 방사성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는 ‘보통 물’ 속 극소량인 삼중수소가 내는 아주 약한 방사능이 수백만 년간 생물진화에 영향을 계속 미쳐 돌연변이를 일으키지 않았나 하고 짐작한다.
일산화탄소(CO) 중독 사고도 다뤘다. CO 자체가 독극물? 이 의문을 풀자면 폐에서 수집된 산소를 세포로 운반하는 단백질 분자인 헤모글로빈(
C₂₉₅₄H₄₅₁₆N₇₈₀O₈₀₆S₁₂Fe₄)을 살펴봐야 한다. 피 한 방울엔 헤모글로빈이 10
17여 개 들었다. 화학식이 보여주듯 거대분자다. Fe를 품은 헴(Heme)이라는, 주머니처럼 생긴 폴리펩타이드 4개가 덩어리를 이뤘다. 이 4개 헴에 각각 산소가 1개 붙어 운반된다. 그런데 CO는 Fe와 결합하는 힘이 산소의 그것보다 수백 배 세다. CO를 과량 마시면 헤모글로빈에 CO가 달라붙는다. 이러면 신체에 산소 공급이 중단된다. CO는 산소보다 크기가 작지만 비슷하게 생겨서 이런 일이 생긴다.
■ 유익함과 역기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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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화학자 파스퇴르가 칼륨 결정 위에 매달린 광견병에 걸린 토끼 척추 골수를 관찰하고 있다. 그는 이 실험으로 광견병 백신을 얻었다. |
분자끼리 닮은 점이 유용할 때도 있다. 단맛을 가진 부동액 에틸렌글리콜(CH₂OHCH₂OH)을 음료수로 착각해 마시는 사고가 간혹 일어난다. 부동액 자체는 무독하나 체내에 흡수된 뒤부터가 문제다. 여러 세포 내 효소가 부동액을 옥살산으로 분해한다. 이 성분은 콩팥 등에 유해하다. 부동액을 마셨을 때 응급실에 가기 전 취해야 할 조치는 이렇다. 취할 정도로 술(에탄올, CH₃CH₂OH)을 마시게 한다. 에틸렌글리콜을 마시면 제일 먼저 알코올수소제거효소가 달려들어 분해한다. 이때 술을 많이 먹으면 이 과정이 저지된다. 에틸렌글리콜과 에탄올은 비슷하게 생긴 까닭에 효소는 과량으로 들어온 에탄올에 몽땅 달라붙고, 에틸렌글리콜은 분해되지 않고 체외로 배출된다.
항생제 개발 과정은 큰 감동을 준다. 1937년 탄생한 연쇄상구균 감염을 치료하는 설파닐아마이드는 ‘신의 약’이다. 그전엔 이 세균에 감염되면 의사가 환자에겐 딱히 해줄 치료가 없을 정도로 무서웠다. 죽음을 기다리던 환자에게 막 개발된 이 항생제가 투여되자 ‘기적’이 일어났다.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증상이 나아졌고 환자는 다음 날 완전히 회복됐다. 약효는 이러하다. 비타민 B 일종이자 중요한 세포 구성 중간물질인 엽산염을 인체는 만들지 못해 섭취해야 한다. 반면 이 구균은 파라-아미노벤조산이란 화합물에 효소를 작용시켜 엽산염을 만들어 낸다. 이 설파제는 파라-아미노벤조산과 흡사하다. 이 항생제가 투여돼 세균에 침투하면 엽산염 합성 효소가 달라붙어 분해한다. 결국 구균은 엽산염에서 생장에 필요한 화합물을 얻지 못해 죽고, 환자는 건강을 회복한다.
저자는 화학이 가진 유익한 힘과 역기능을 함께 보여준다. 4부 ‘뭔가가 잘못될 때’에서다. 그뤼넨탈 화학사는 새 신경안정제인 일명 ‘탈리도마이드’를 개발해 1956년부터 호흡기 감염을 치료하는 조제 약품과 진정 최면제로 시중에 팔았다. 그런데 약효와 부작용을 확인하는 과정이 허술하게 이뤄졌다. 1959년부터 탈리도마이드가 일으키는 심각한 부작용인 신경염 증상이 보고됐다. 제약사는 이를 부정하고 언론 보도를 막았다. 의사들은 이 약을 임신부에게 처방했다.1960년부터는 기형아를 출산하는 사례가 잇달았다. 신생아가 물개처럼 손발이 어깨와 엉덩이에 달라붙은 기형, ‘해표지증’이었다. 두 눈이 비정상인 부작용이 20여 개 나라에서 나타났다. 제약사는 1961년 11월 탈리도마이드 생산을 중단하고 시중 제품을 걷어 들였다.
저자는 이렇게 엄청난 재앙을 일으킨 ‘엉터리 과학’을 질타한다. “더 엄격한 규제 탓에 새 의약품이 개발 못 돼 많은 사람이 죽게 되었는가가 문제가 아니라, 그런 규제로 탈리도마이드 사태 같은 재난이 예방돼 얼마나 많은 생명을 구했는가가 더 중요한 문제다.”
■ 그림자와 빛
세계 각국에서 화학이 일으킨 재난은 끊이지 않는다. 환경 재앙에 대한 경각심과 규제가 커진 21세기에도 그렇다. 우리나라에서도 영국 다국적기업 레킷벤키저사가 개발한 가습기살균제 ‘옥시싹싹’으로 사망자 143명을 포함해 피해 인원이 530명에 이르렀다(정부 공식 발표 수치). 화학 재난은 우리가 조금이라도 방심하는 순간을 치고 들어오는 ‘야누스’ 같은 존재라는 걸 이 고전은 잘 보여준다. 화학을 조금이라도 더 알아야 한다는 얘기다.
호프만 교수는 화학 세계에 드리운 ‘그림자’와 더불어 ‘빛’도 소개한다. 시인인 저자는 철학자 예술가로 변신한다. “화학은 분자와 분자가 만나 변환하는 과정을 말한다. 화학자는 새 물질을 합성하거나 발견하는데 나는 합성하는 능력에 더 점수를 준다. 창조하는 일이고 이는 예술이다.” 그는 ‘분자 철학’을 펼쳐 든다. 분자는 ‘대립성’을 보인다고 강조한다. 대립, 긴박감과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단어다. 대립성은 심할 경우 극단으로 대비되는 성질을 말한다. 선·악, 정(靜)·동(動)처럼. 100년간 밀봉한 포도주병을 생각해보자. 병 속 수많은 분자는 정지한 듯 보인다. 하지만 코르크 마개와 포도주 액 사이 공간으로 수많은 분자가 뛰어오르고 다시 포도주 속으로 들어가는 움직임이 균형을 이룬다. 정과 동이 이룬 긴장감이 명품 포도주를 만들어냈다. 이번엔 사무실이다. 실내가 조용하지만, 공기 속엔 산소를 포함한 여러 분자가 미친 듯 충돌하는 중이다. 2m 떨어져 앉은 부장이 업무를 지시하는 목소리와 그가 바른 향수 입자가 각각 그 아우성 속을 뚫고 내 귀와 콧속 세포에 닿는다. 저자는 이런 미시 세계에 ‘아름다움’을 느낀다.
저자는 화학과 인문학을 넘나든다. 화학자 리처드 제어가 “나에게 화학을 가장 잘 함축한 단어를 꼽으라면 ‘촉매(Catalyst)’를 선택하겠다”고 한 말을 들려준다. 촉매는 소량을 넣어도 화학 반응을 빨리 일어나게 하고 다시 재생되는 물질이다. 이를 두고 저자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인식되는 걸 쉽게 이뤄 난관을 극복하게 하는 능력, 소모됐는데 재생하는 건 ‘기적’이라고 썼다. 지하 세계에 잡혀 있다가 봄이면 땅으로 올라와 만물을 소생케 하는 페르세포네와 부활한 예수에 견주었다. 우리 삶에 촉매를 가졌다면 축하할 일. 저자는 괴테 소설 ‘친화력’ 중 등장인물 미틀러가 촉매를 언급했다며 이 소설을 치켜세웠다.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한’ 세계는 우리가 사는 민주 세상 모습이기도 하다. 이런 특질을 잘 이해하고 받아들일 때 삶은 한결 안정을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