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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장화, 홍련’을 제치고 한국 공포영화 흥행 1위에 오른 ‘살목지’의 한 장면. 주연을 맡은 배우 김혜윤은 영화의 흥행에 힘입어 차세대 호러퀸으로 거듭났다. 쇼박스 제공 |
- 10대·3인 이상 관객 흥행 주역
- 실제 예산군 저수지 괴담 모티브
- 방문 인증샷 ‘살리단길’ 신드롬
- 특수 장비 차별화된 볼거리 한몫
한국 공포 영화의 새로운 역사가 쓰였다. 주인공은 ‘살목지’(이상민 감독)다. ‘살목지’가 23년간 1위 자리를 굳건히 지켜온 ‘장화, 홍련’(김지운 감독)의 누적 관객 수 314만 명을 돌파하며 한국 공포 영화 역사상 최고 흥행작이 됐다.
‘살목지’는 ‘왕과 사는 남자’의 관객 1000만 돌파 이슈로 인해 개봉 초반 큰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꾸준한 입소문을 타며 유의미한 기록을 세웠다. 영화는 조용하나 강했다. 손익분기점인 80만 명을 개봉 7일 만에 넘긴 데 이어 개봉 10일 만에 100만, 20일 만에 200만, 33일 만에 3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존재감을 보여줬다. 개봉 6주 차에 접어든 현재까지도 박스오피스 상위권을 지키고 있어 장기 흥행을 예고 한다.
영화계는 ‘살목지’의 흥행을 크게 반기는 분위기다. 중·저예산으로 제작되는 공포영화는 과거 한때 신인 감독과 배우의 등용문으로 통해왔다. ‘장화, 홍련’의 김지운 감독을 비롯해 정범식 감독(‘기담), 김태용 민규동 감독(‘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 등이 공포 영화를 통해 연출력을 인정받은 바 있다. 신인 배우들 역시 공포 영화를 통해 많이 배출됐는데, 특히 ‘여고괴담’ 시리즈는 최강희 김규리 박예진 박한별 김옥빈 오연서 등 수많은 스타를 발굴하며 주목받았다.
그러나 한 철 장사를 노린 얕은 기획의 공포물이 쏟아지면서 공포 영화는 경쟁력을 잃고 외면받기 시작했다. 관객의 외면 속에서 ‘공포영화는 여름이 제철’이라는 공식도 무너진지 오래. 이러한 분위기에서 ‘살목지’의 흥행은 한국 공포 영화의 경쟁력이 완전히 죽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첫 장편 연출에 나선 1995년생 신인 이상민 감독과 김혜윤, 이종원 등 젊은 배우들로 꾸려져 시너지를 냈다는 점에서도 의미심장하다. ‘선재 업고 튀어’로 큰 사랑을 받은 김혜윤은 ‘살목지’로 호러퀸이라는 타이틀도 얻었다.
‘살목지’ 흥행의 중심에는 관객의 적극적인 참여가 있다. 작품의 배경인 살목지는 충남 예산에 있는 저수지로, 물가에서 여성의 형체를 봤다는 이상한 괴담이 떠돌며 일찍이 주목받은 공간이다. 해당 괴담은 MBC 예능 ‘심야괴담회’를 비롯한 TV 프로그램과 유튜브에 소개되기도 했다.
영화 ‘살목지’는 이러한 실제 지명을 적극적으로 차용하면서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영화가 장소에 대한 관심을 역으로 이끌기도 했다. 영화가 인기를 끌면서 온라인상에는 살목지 방문 인증샷이 공유됐고, 살목지는 ‘살리단길’이라는 별칭까지 얻었다. 방문객이 몰리자 예산군은 오후 6시 이후 통행 제한 조치를 시행했는데, 이것이 바이럴 마케팅이 되면서 영화에 대한 관심을 끌어올리는 촉매제가 됐다. 관객이 단순히 수동자에 머물지 않고, 직접 참여해 영화에 대한 관심을 이끄는 주체자가 된 것이다.
‘살목지’는 이야기가 아주 독창적인 공포 영화는 아니다. 공포 장르 특유의 공식을 답습하는 면이 있고, 하지 말라는 걸 꼭 하는 ‘고구마 먹은’ 듯한 인물들도 어김없이 등장한다. 호평 못지않게, ‘그다지 무섭지 않다’는 혹평도 존재하는 게 사실.
그러나 디지털 시대에 맞춰 새로운 장비를 끌어안음으로써 뭔가 새로워 보이는 효과를 낳은 게 주효했다. 실제로 영화는 360도 파노라마 카메라, 무빙 디렉터, 고스트 박스 등 특수 장비를 적극적으로 사용해 기존 공포물과의 차별화하며 볼거리를 제공했다.
특히 ‘살목지’는 10대 관객과 3인 이상 관객 비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는데, SNS 공유가 활발한 젊은 세대에게 퍼져 있는 ‘함께 즐기는 체험형 소비’ 성향이 영화로 옮겨 온 사례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살목지’의 흥행이 침체돼 있던 충무로 공포 영화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지켜볼 일이다.
정시우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