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인터넷에서 본 초등학교 운동회 사진 한 장이 가슴에 폭 담겨왔다. 장애를 가진 친구에게 같은 반 친구들이 아름다운 추억을 선물하는 장면이었다. 장애가 있어 운동회 달리기에서 매번 꼴찌를 하는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를 위해 달리던 아이들은 모두가 결승점을 앞두고 그 친구를 기다렸다. 그리고는 다 함께 손을 잡고 결승점을 향해 달렸다. 그 결과 모두 1등!
이를 보면서 핀란드 어느 교육청장의 "교육은 좋은 시민이 되기 위한 교양을 쌓는 과정이다. 경쟁은 좋은 시민이 된 다음의 일이다"라는 말의 진정한 의미를 그 아이들은 어쩜 이리도 잘 실천하고 있는지, 1등만을 최고로 가르쳐온 어른의 한사람으로 부끄러운 마음 뿐이었다.
예로부터 교육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 하였다. 십년 계책으로는 나무를 심는 것만한 게 없고, 백년 계책으로는 사람을 키우는 일만한 게 없다는 뜻이다. 교육은 국가와 사회 발전의 근본 초석이라 백년을 내다보는 큰 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의미다. 교육(敎育)은 미성숙 상태의 아이를 성숙한 어른이 되도록 위에서는 모범을 보이고 베풀면서 격려하고 아래에서는 이를 공경하고 본받는다는 뜻을 담고 있다.
그런데 오늘날의 교육은 어떠한가? 1980년대 미국 영국 등 수많은 나라가 "더 많은 인재를 키우려면 학생들의 경쟁을 강화해야 한다"며 '경쟁'을 택했다. 그렇다면 '경쟁'은 올바른 교육을 위한 최선의 방법일까? 이런 의문 속에서 북유럽 국가 중 가진 자원은 부족하고 강대국으로 둘러싸여 있는 작은 나라, 핀란드의 교육방법을 돌아보게 된다.
핀란드는 말하고 있다. '자원이 적어서 어느 아이의 재능이든지 잃어버릴 여유가 없으며 모든 아이의 재능을 찾기 위하여 교실에서 경쟁은 금지하고 협동을 강조한다'고. 교육의 목표는 경쟁에 의한 우월한 학생을 찾는 것이 아니라 같은 배를 탄 아이들은 모두 무사히 항구에 이르도록 하는 것이며 단 한 명의 낙오자도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학교에서 경쟁만을 배우고 협동을 배우지 못한 아이들은 앞으로 사회의 미래를 책임질 수 없으며 그 사회는 다른 나라들에게 경쟁력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핀란드 교육의 핵심은 우리 사회가 다 같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협동이 중요하며, 협동의 참 의미를 가르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교육의 목표라는 것이다. 핀란드에는 성적표가 없다. 교사가 "이번 학기에는 수학을 좀 더 공부했으면 좋겠다" 정도의 피드백만이 있을뿐이다. 이러한 교육방법은 어떤 변화에도 흔들림 없이 지금까지 지켜져 오고 있다. 그 결과 핀란드는 OECD 주관 국제학업성취도평가 PISA 연속 1위, 세계에서 학생 간 학업성취도 편차가 가장 낮은 나라, 세이브더칠드런에서 발표한 176개국 중 최고점 등의 평가를 받았다.
한국의 교육열은 세계 많은 나라에서 본받고자 한다. 하지만 현재 OECD 국가 중 청소년 자살율 1위(2013년), OECD 36개국 중 행복지수 27위(2013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세계경제 10위권, 국민소득 2만 달러라는 성과의 그늘이다. 이런 우리를 보며 다른 나라들은 "한국의 학업성취도가 높지만, 학업성취도가 비슷한 이웃국가 학생들은 웃으면서 공부하는데 비해 한국 학생들은 울면서 공부하지 않습니까?"라고 묻는다. 이러한 현실이기에 한 장의 사진 속에 담겨있는 아이들을 보면서 시월을 시작하는 어느 날이 가슴이 너무나 시린 날이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한다.
구평복지관 이혜정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