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온다는 건/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그는/그의 과거와 현재와/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부서지기 쉬운/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마음이 오는 것이다/그 갈피를/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마음/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낸다면/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이라는 시다. 시를 즐겨 읽지 않는 필자가 이 시 만큼은 직업적인 이유에서 하루의 시작과 함께 꼭 읽는 것이 이제는 습관이 됐다. 시험관아기 인공수정 등 난임 진료를 하는 의사인 필자에게 이 시가 주는 의미는 상당하다. 의사로서의 직업의식 또는 소명을 이 시만큼 극명하게 표현해주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하루에도 수십 명의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들을 진료실에서 만난다. 난임 여성의 절반 이상은 우울과 불안을 동반한 심각한 정서적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수의 심리학 연구에 의하면 놀랍게도 난임이 주는 스트레스는 전이가 진행된 암과 같은 위중한 질환 수준으로 그 강도가 높다고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난임 여성은 겉으로 오히려 더 태연하다. 아마도 본인이 겪는 이러한 고충을 그 누구도 이해하고 위로해주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스스로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심지어 남편조차 나의 편이 돼주지 못한다는 하소연을 자주 듣는다. 난임을 대하는 남녀 간 심리 차이를 분석한 연구를 보면 일반적으로 남편은 아내보다 난임이란 상황을 훨씬 덜 절박하게 받아들인다. 그러다 보니 남편이 아내의 이런 간절함을, 그래서 생기는 불안감과 초조함을 잘 이해해주지 못하고, 오히려 또 다른 부부 간에 갈등이 생기는 사례를 흔히 접할 수 있다. 주변 사람의 과도한 관심은 또 어떠한가. 이는 난임 여성에게는 관심과 친절을 가장한 폭력일 수도 있다.
난임 기간이 길어질수록 이러한 정서적 문제는 깊어진다. 이렇게 임신 실패를 거듭한 고통스러운 과거를 안고, 그래도 소중한 아기가 찾아와 줄 것이라는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고, 오늘 다시 용기를 내어 많은 여성이 난임 클리닉을 찾는다. 한 사람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같이, 그 사람의 일생이 오는 실로 어마어마한 일을 필자를 포함한 의료진과 연구진이 감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막중한 책임감에 어깨가 무거워진다.
어쩌면 스스로 필자의 직업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눈코 뜰 새 없이 돌아가는 진료 현장에서 늘 이런 마음가짐을 유지하기란 사실 쉽지 않다. 하지만 사람의 일생이 오는 어마어마한 일을 마주하고 있다는 생각은 열정과 성심을 다해 진료에 임하게 하고, 새로운 치료법과 술기를 부지런히 공부하게 하고, 임신율 향상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장비를 재투자하게 하며, 무엇보다 그분들의 정서적 어려움에 좀 더 공감할 수 있도록 하는 근간이 된다.
난임 치료의 결과는 임신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결과에 집착하게 된다. 그렇지만 임신까지 가는 여정 또한 소중하게 여겨져야 한다. 이 여정에서 마음이 부서지지 않아야 결과도 좋아진다. 명상, 요가, 심리 상담 등을 통한 스트레스 관리가 임신율을 의미 있게 높인다는 사실은 이미 많은 연구를 통해 입증된 만큼, 난임을 겪는 여성 자신도 평온하고 즐거운 평상심을 유지하기 위한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의사인 필자도 한 사람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만난다는 변함 없는 마음으로 임신을 향한 쉽지 않은 여정에서 훌륭한 길잡이와 동반자가 된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구자성 좋은문화병원 부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