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진료실에서] 생명이 오는 길에서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06-10 18:39:49
  •  |   본지 24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사람이 온다는 건/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그는/그의 과거와 현재와/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부서지기 쉬운/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마음이 오는 것이다/그 갈피를/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마음/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낸다면/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이라는 시다. 시를 즐겨 읽지 않는 필자가 이 시 만큼은 직업적인 이유에서 하루의 시작과 함께 꼭 읽는 것이 이제는 습관이 됐다. 시험관아기 인공수정 등 난임 진료를 하는 의사인 필자에게 이 시가 주는 의미는 상당하다. 의사로서의 직업의식 또는 소명을 이 시만큼 극명하게 표현해주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하루에도 수십 명의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들을 진료실에서 만난다. 난임 여성의 절반 이상은 우울과 불안을 동반한 심각한 정서적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수의 심리학 연구에 의하면 놀랍게도 난임이 주는 스트레스는 전이가 진행된 암과 같은 위중한 질환 수준으로 그 강도가 높다고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난임 여성은 겉으로 오히려 더 태연하다. 아마도 본인이 겪는 이러한 고충을 그 누구도 이해하고 위로해주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스스로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심지어 남편조차 나의 편이 돼주지 못한다는 하소연을 자주 듣는다. 난임을 대하는 남녀 간 심리 차이를 분석한 연구를 보면 일반적으로 남편은 아내보다 난임이란 상황을 훨씬 덜 절박하게 받아들인다. 그러다 보니 남편이 아내의 이런 간절함을, 그래서 생기는 불안감과 초조함을 잘 이해해주지 못하고, 오히려 또 다른 부부 간에 갈등이 생기는 사례를 흔히 접할 수 있다. 주변 사람의 과도한 관심은 또 어떠한가. 이는 난임 여성에게는 관심과 친절을 가장한 폭력일 수도 있다.

난임 기간이 길어질수록 이러한 정서적 문제는 깊어진다. 이렇게 임신 실패를 거듭한 고통스러운 과거를 안고, 그래도 소중한 아기가 찾아와 줄 것이라는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고, 오늘 다시 용기를 내어 많은 여성이 난임 클리닉을 찾는다. 한 사람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같이, 그 사람의 일생이 오는 실로 어마어마한 일을 필자를 포함한 의료진과 연구진이 감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막중한 책임감에 어깨가 무거워진다.

어쩌면 스스로 필자의 직업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눈코 뜰 새 없이 돌아가는 진료 현장에서 늘 이런 마음가짐을 유지하기란 사실 쉽지 않다. 하지만 사람의 일생이 오는 어마어마한 일을 마주하고 있다는 생각은 열정과 성심을 다해 진료에 임하게 하고, 새로운 치료법과 술기를 부지런히 공부하게 하고, 임신율 향상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장비를 재투자하게 하며, 무엇보다 그분들의 정서적 어려움에 좀 더 공감할 수 있도록 하는 근간이 된다.

난임 치료의 결과는 임신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결과에 집착하게 된다. 그렇지만 임신까지 가는 여정 또한 소중하게 여겨져야 한다. 이 여정에서 마음이 부서지지 않아야 결과도 좋아진다. 명상, 요가, 심리 상담 등을 통한 스트레스 관리가 임신율을 의미 있게 높인다는 사실은 이미 많은 연구를 통해 입증된 만큼, 난임을 겪는 여성 자신도 평온하고 즐거운 평상심을 유지하기 위한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의사인 필자도 한 사람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만난다는 변함 없는 마음으로 임신을 향한 쉽지 않은 여정에서 훌륭한 길잡이와 동반자가 된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구자성 좋은문화병원 부원장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오늘이슈

 많이 본 뉴스RSS

  1. 1부산에 엔비디아 전용 생산라인 선다(종합)
  2. 2전국 언론인 청와대 앞 집결…“국제신문 대주주 엄벌” 촉구
  3. 3부산 재정자립도 1위 강서구, 생활임금 도입 나홀로 거부
  4. 4되돌아와 수로 출구 앞에서 맴도는 부캉이
  5. 5공공 건설현장인데…추락 안전망 없고 감독 태만 부지기수
  6. 6북극항로 개척자 “유빙·극한환경서 새 희망 봤다”
  7. 7오늘의 날씨- 2026년 10월 23일
  8. 8[도청도설] if, 손아섭
  9. 9종합 6위 부산, 고른 활약에도 아쉬움
  10. 10로그인 없이 서버장악 가능…전 세계 ‘PHP’ 보안 비상
  1. 1가덕 공사비 증액 ‘강제’ 아닌 ‘권고’…법개정 정부 초안 논란
  2. 2北 “국경선 확성기 외 새 대응수단 대기” 연일 대남 협박(종합)
  3. 3최길수 특별감찰관 청문보고서 채택
  4. 4공소청 첫 국감 ‘李 공소 취소’ 공방…檢 총장 대행 “검토·지시 한 바 없어”
  5. 5금융위원장 "산은 부산 이전 하지 않는 것으로 정리" 파장
  6. 6더 밀릴 수 없다…지지율 위기에 정면돌파 택한 당청
  7. 7김용범·김현지 국감 증인채택 무산
  8. 8[뭐라노]4년에 한 번 올릴 기회…기초의회 의정비 인상 붐
  9. 9김여정 "국경선 새 대응수단 임무대기…확성기도 수일 내 가동"
  10. 10이 대통령 "중수청 지휘감독 포기하는건 탄핵사유" 野 "국무회의 참석하면 밀실지휘 없어지나"
  1. 1부산에 엔비디아 전용 생산라인 선다(종합)
  2. 2북극항로 개척자 “유빙·극한환경서 새 희망 봤다”
  3. 3로그인 없이 서버장악 가능…전 세계 ‘PHP’ 보안 비상
  4. 4부산시대 연 HMM, 올해만 6조원 투자
  5. 5부산 온 인도 구자라트주 대표단, 지역기업과 조선·금융 협력 모색
  6. 6서낙동강 수변입지에 4Bay 구조…실속 갖춘 59㎡ 단일평형 차별화
  7. 7[한 손 뉴스] 낙상·실종 막는 ‘스마트신발’…부산TP, 노약자 지원 확대
  8. 8흑백요리사 셰프, 국내산 수산물 해외 홍보 나섰다
  9. 9부산건설사·대기업, 상생협력 머리 맞댄다
  10. 10한은 기준금리 3% 동결…긴축 유지, 속도조절 속 내달 다시 인상 가능성(종합)
  1. 1전국 언론인 청와대 앞 집결…“국제신문 대주주 엄벌” 촉구
  2. 2부산 재정자립도 1위 강서구, 생활임금 도입 나홀로 거부
  3. 3되돌아와 수로 출구 앞에서 맴도는 부캉이
  4. 4공공 건설현장인데…추락 안전망 없고 감독 태만 부지기수
  5. 5오늘의 날씨- 2026년 10월 23일
  6. 6취임하자마자…도시철 파업 막기 숙제
  7. 7특검팀, 마산합포구선관위 등 투표자수 허위 입력 6곳 추가 확인
  8. 8구조하다 놓친 익수자 숨진 채 발견
  9. 9부산 다문화 고교생 5년새 2배…정작 한국어학급 ‘0’
  10. 10부산청년 취업 등 여전히 팍팍하네 “맞춤형 정보 절실”
  1. 1종합 6위 부산, 고른 활약에도 아쉬움
  2. 2만년 꼴찌 삼성 선두 ‘파란’…前 챔프 KCC 최하위 ‘수모’
  3. 3쇼트트랙 전설 최민정의 마지막 질주
  4. 4‘높이’ 키운 BNK썸, 2년 전 영광 재현 노린다
  5. 5호랑이 발톱 세운 김도영…돌아온 사자 포효 최형우
  6. 6축구협회장 선거, 12월 18일 추진
  7. 7요트 하지민, 레이저급 정상…전국체전 16연패 역사 쓰다
  8. 8부산시설공단 여자핸드볼팀 전국체전 2년 연속 금메달
  9. 9마무리 캠프 코앞인데…롯데 감독·단장 인선 언제쯤
  10. 10유럽 강호 맞서는 김시우·임성재
우리은행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