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은 아버지는 20대에, 결혼하고 한 달 만에 뇌종양이 발견됐다. 병원에서 부랴부랴 수술을 받았지만, 회복하지 못하시고 돌아가셨다. 그 위의 작은 아버지는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전선에서 평생을 고생하시면서 간경화와 간암으로 돌아가셨다. 그분에게는 결혼해서 낳은 갓 난 얘기인 딸이 하나 있었다. 그렇게 나는 어린 시절부터 가족력이라는 암의 잠재적인 위험과 두려움을 안고 살아가야 했다.
십여 년 전, 나는 수련했던 병원에서 정기적으로 오는 원보를 펼쳐보다가, 암 말기 환자의 남편이 잔잔한 어투로 쓴 투고문에 눈이 갔다. ‘오늘도 그녀의 머리맡에 진통제 한 알을 올려놓고’로 시작하는 그의 글을 읽으면서, 나는 그가 짊어진 삶의 무게가 느껴져 가슴이 아렸다. 그렇지만 그때의 나는 ‘암은 두렵지만, 남의 일’이라고만 생각했었다. 결혼하고도 집사람을 설득해서, 있던 보험도 없애고 암 보험도 들지 않았다.
지금으로부터 몇 년 전, 병원에서 일하는 도중 집사람의 전화를 받았다. 그녀의 첫 마디는 “여보 나 암인 것 같아”였다. 처음엔 믿지 않았고, 정확히 말하자면 믿지 않으려 했다. 그렇지만 나는, 집사람이 보내온 MRI소견서에서 진실을 마주해야 했다. 병원에 같이 가자고 하는 내 전화에 불안해진 집사람의 말이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다. “나 죽는 거야?” 간신히 그녀를 달래고 전화가 끝나자, 나는 북받쳐 오르는 감정에 소리죽여 많이 울었다.
나는 내시경실에서 내시경을 하는 외과 의사이다. 10년 넘게 내시경을 하고, 우리 병원뿐 아니라 다른 검진 병원에서 용종을 제거하기 위해 보내주는 환자들을 매일 시술하다 보니, 이제는 용종과 암에 익숙해졌다. 매일같이 용종을 제거하고 간혹 대장암이나 위암을 찾아내기도 한다. 가끔은 치핵 수술 전에 확인 차 검사하였다가 암이 발견되기도 한다. 크기가 큰 용종의 경우 대장내시경으로 제거 시 추가 수술이 필요한 진행성 암이 나올까 봐 걱정하는데 다행히 수술하지 않아도 되는 상피내암으로 진단될 때는 참으로 다행스럽고 대장내시경 전문의로서 뿌듯함을 느낀다.
내시경을 하다가 대장의 한 구석에서 일그러진 암 덩어리를 만날 때마다, 그 환자들이 몇 년 전에 검진한다고 내시경을 받았다면 아무렇지 않게 훌훌 털어냈을 텐데, 내가 그들의 용종을 다 제거해주었을 텐데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다행히 최근 내시경 장비 및 기술의 발달로 암이더라도 진행이 안 되고, 암의 모양새에 괜찮다면 ESD(내시경적점막하박리술)라는 조금 어려운 내시경 수술로 제거할 수 있다. 대학병원이 아니라도 우리 병원 같은 전문병원에서는 충분히 가능한 시술이다.
나는 집사람이 암 수술 날짜를 잡고 기다리던 그 날의 초조한 심정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명색이 나도 외과의사기에 머리로는 몇 달 만에 암이 더 진행이 될 가능성이 낮다는 것을 알면서도, 불안한 마음에 하루라도 더 빨리 수술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내시경을 해서 암을 발견하면 응급으로 조직검사를 하루 만에 확인하고, 다음날이나 늦으면 그다음 날에라도 바로 암수술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춘 우리 병원이 얼마나 대단한지, 그리고 환자들이 얼마나 마음 졸이는 고통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을지 생각해 본다. 건강하고 생명력이 넘치는 평소의 우리는 가끔 우리 주변에 있는 죽음을 망각하기 쉽다. 어떻게 사는 것이 건강하고 행복한 삶인가를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본다.
부산항운병원 윤지훈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