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리과요?” “아니요, ‘병원’ 할 때 ‘병리과’입니다.” 이런 일을 가끔 겪는다. 나는 전공의 포함해 병리과 의사 생활 16년째다. 직업병인 ‘일자목’과 안구건조증이 없었고 철도 없던 시절의 나는 엄청나게 중요한 일을 하는 것 같은데, 우리 과를 알아주는 이가 별로 없다는 사실에 속상했지만 이제는 그러려니 한다.
병리과는 한마디로 ‘진단’을 하는 곳이다. 정확한 판독은 암 치료의 방향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다. 환자로부터 채취한 세포 조직 장기의 표본을 현미경으로 관찰한다.
병변이 염증 혹은 종양인지 양성인지 아니면 악성인지 판별하는 것이다. 만약 악성 종양(암)이라면 그 형태와 기원, 병기 등을 진단해 임상의사가 치료방침을 결정하고 예후를 예측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예를 들어, 커진 림프절이 만져질 경우 필요에 따라 세침흡인 검사가 이뤄진다. 이때 주사기에 빨려들어온 세포들을 유리 슬라이드에 발라서 현미경으로 면밀히 살펴본다. 그것이 원래 림프절 세포가 아닌 암세포로 확인되면, 그 특징적 형태를 보고 어디가 원발 부위일 가능성이 높은지 감별한다. 이를 바탕으로 여러 ‘과’가 함께 의심 부위를 찾아내 조직검사를 시행하고, 그것을 아주 얇게 잘라서 유리 슬라이드에 붙이고 염색해 같은 암이 맞는지 확인한다.
만일 수술이 필요하면 병변 부위 또는 장기 전체를 절제하게 된다. 이와 관련해 병리과에서는 그 크기와 깊이 범위 절단면의 상태 등을 관찰한 후 대표 부위를 판독하고 병변에 대한 정보를 임상의사에게 최대한 제공한다. 이를 통해 최적의 암치료가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다.
흔히 의사라고 하면 떠올리는 ‘임상과’ 대신 ‘비임상과’인 병리과를 택했던 것은 사람을 만나지 않기 위해서였다. 환자나 아픈 분 때문에 힘든 사람을 만나면 과몰입이 심한 것이 문제였다. 인턴 시절 중환자실의 돌아가신 분 옆에서 울고 있다가 보호자로 오인된 적이 있었다. 그때 레지던트 선생님이 “너는 지금 착한 의사 같지? 다른 환자분들 안보여? 응급 터지면 어쩔 거야? 냉정함을 유지 못하는 것은 의사자격이 없는 거야”라고 말했다. 충격이었지만 이해가 됐다. 병원에서 일하며 느낀 여러 감정에 나는 적절하게 대처할 수 없었다.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듣는 의사가 되겠다’는 나의 꿈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순간이었다.
물론 나는 여전히 병리검사 의뢰지를 보면서도 혼자 울고는 한다. 환자분의 얼굴은 모르지만, 나이가 어리거나 나와 비슷해서 혹은 재발이어서 등등 여러 가지 이유로 마음이 아파서다. 하지만 눈물을 닦고 더 맑아진 눈으로 더 열심히 현미경을 보면서, 꽤 잘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그저 암센터의 병리의사로서, 마음 속 ‘나의 환자분’이 최선의 치료를 받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그래서 나의 눈물이 가짜가 아님을 스스로에게 증명하기 위해, 진심을 다해 하루하루 정확한 판독에 최선을 다한다.
나의 판독 덕에 최적의 암치료로 새 삶을 찾을 환자분들을 떠올리며 오늘도 병리과 의사로서 보람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