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 배꽃
이화(梨花)에 월백(月白)하고, 은한(銀漢)이 삼경일제(三更一際) / 일지춘심(一枝春心)을 자규(子規)야 알랴마는 / 다정(多情)도 병(病)인 양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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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름달에 비춰지는 배꽃은 일년 중 음력 3월 보름을 전후해 한차례 볼 수 있습니다. 올해 보름에는 비 소식이 있어 보름 전날 울주군 서생면 용리마을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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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 문신 이조년은 숨 막히도록 아름다운 봄밤의 정서를 짧은 시조를 통해 오롯이 녹여냈습니다. 맑고 투명한 달빛 아래 하얗게 핀 배꽃, 은하수처럼 번지는 밤하늘, 그리고 정적을 깨우는 두견새의 울음. 시각과 청각의 대비 속에 가슴 저미도록 애절한 그리움은 한이 되어 가슴 속에 묻히고 맙니다. 시는 사랑하는 이를 향한 애틋한 그리움을 노래하는 듯, 임금에 대한 충정의 그리움인 듯 ~ 시인의 마음을 감히 헤아리기는 어렵지만, 그리움 속에 어린 한의 정서는 700년 세월을 넘어와 가슴에 조용히 내려앉습니다.
학창 시절, 국어 시간에 처음 접했던 구절은 오래도록 마음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언젠가 달빛 아래 피어난 배꽃 아래에서 시조를 읊조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지요. 오래된 숙제를 하듯 경남 울주군 서생면 용리마을을 찾았습니다. 마을 산자락을 덮은 채 하얀 물결처럼 넘실거리는 배밭에 앉아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일제 …” 노래하듯 시조를 읊조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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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꽃 핀 것을 보면 벚꽃 구경 갈 필요가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아름답고 황홀합니다. 바람과 함께 흩날리는 모습은 자유로운 영혼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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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꽃은 벚꽃이 지고 난 봄의 빈자리를 채우듯, 단아한 꽃망울을 틔웁니다. 화려한 꽃비 대신, 맑고 정갈한 흰 꽃잎이 바람을 따라 나부끼는 모습은 깊은 감동을 안겨줍니다. ‘이화(梨花)’?배꽃의 한자 이름입니다. 사학명문 ‘이화여대’의 ‘이화’도 바로 이 배꽃에서 유래한 것이지요. 꽃말은 ‘온화한 애정’, ‘위로’, ‘위안’. 참으로 따뜻하고 순수한 의미입니다. 고종 황제는 “배꽃처럼 순결하고 향기로우며, 그 열매처럼 그 배움 또한 그러하리라”는 뜻으로 이화여대의 전신 이화학당이라는 이름을 내렸다고 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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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꽃은 처음 필 무렵, 꽃밥이 여리게 분홍빛을 띠다가, 시간이 지나면 점차 짙은 흑갈색으로 바뀌며 성숙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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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꽃은 처음 필 무렵, 꽃밥이 여리게 분홍빛을 띠다가, 시간이 지나면 점차 짙은 흑갈색으로 바뀌며 성숙해집니다. 그 변화마저도 어쩐지 인생의 어느 순간을 떠오르게 하지요. 지금 우리가 먹는 배는 돌배나무(Pyrus pyrifolia)의 개량종으로, 단지 달고 시원한 과일 그 이상으로 예부터 우리 곁에서 많은 사랑을 받아왔습니다. 《동의보감》에도 배는 기침과 천식에 효과가 있으며, 갈증 해소, 숙취 해소, 기관지 질환에도 좋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