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사람과 대화하고 방대한 정보를 순식간에 분석하는 시대다. 생성형 AI가 문장, 이미지, 영상 등 정보를 스스로 만들어내고 학습 추론하며 인간의 지적 영역 일부를 대체한다. 의료 현장에서도 AI는 영상과 검사 결과를 분석하고 의료진의 판단을 돕는다. 사회 경제 문화 등 전반의 패러다임을 AI가 재편하는 셈이다. 그렇다면 기술이 발전할수록 의료에서 더욱 중요해지는 가치는 무엇일까. 필자는 그 답이 ‘사람을 이해하는 일’에 있다고 생각한다.
20여 년 전, 진료 경험을 컴퓨터로 체계화할 수 없을까 하는 고민을 시작했다. 증상을 살피고 질문하며 여러 조건을 종합하는 과정을 기록하면, 임상 경험과 지혜를 다음 세대에 전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 여겼다. 그러나 진료실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던 판단도 컴퓨터로 옮기려면 수많은 조건과 관계를 정리해야 했다. 만들고 고치기를 거듭하는 사이, 막연한 미래로 여겼던 AI가 현실이 되었다. 하지만 한 사람의 건강을 수치와 자료만으로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같은 질병을 앓아도 누군가는 잘 견디고 누군가는 일상생활조차 힘겨워한다. 식사와 소화, 수면과 배설, 호흡과 활동뿐만 아니라 생활환경과 스트레스, 마음의 변화도 함께 살펴야 한다. 같은 병명 안에도 서로 다른 삶과 이야기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한의학은 몸의 증상을 개별적으로 보기보다 서로 어떤 관계를 맺는지 살펴왔다. 이러한 전체적인 관점은 미래 의료에 보탤 자산이다. 다만, 전통이라는 이유만으로 옳다고 할 수는 없다. 과학적으로 검증하고 부족함을 보완해야 한다. 현대의학의 정밀한 검사와 진단, 응급의료와 수술, 약물치료의 가치 역시 존중해야 한다. 필자는 이를 ‘견(見)과 관(觀)’으로 표현하고 싶다. 견은 검사와 영상, 수치와 증상을 통해 눈앞의 질병을 정확히 보는 일이다. 관은 그 사람이 살아온 과정과 몸과 마음의 반응을 깊고 넓게 살피는 일이다. 견으로 질병을 확인했다면, 관으로 개인의 반응과 변증을 살펴 치료를 보완한다. 두 관점은 환자를 이해하는 데 함께 쓰일 수 있다.
여기에 AI의 분석 능력과 의료인의 경험과 공감이 더해지면 환자를 더욱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과학적 검증과 안전성 확보가 뒷받침돼야 한다. 중요한 것은 어느 의학이 우수한지 겨루는 일이 아니라 서로의 부족함을 보완하고 환자에게 더 나은 도움을 주는 일이다.
우리나라는 현대의학과 한의학, 의료인력과 정보통신기술이라는 자산을 갖고 있다. 이를 협력의 토대로 삼는다면 한국의 한양방 의료가 세계인의 건강에 기여하는 길도 열릴 것이다.
100세 시대의 목표는 오래 사는 데만 있지 않다. 건강하게 생활하고 소중한 사람들과 관계를 이어가며 의미 있고 행복하게 사는 데 있다. 치료와 함께 평소 몸의 변화를 살피고 예방과 회복을 돕는 노력이 필요하다. 기술은 빠르게 변해도 환자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서로를 돌보는 마음의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 견으로 정확히 보고, 관으로 깊이 살피며, AI로 지혜를 넓히고 사람의 마음으로 길을 만드는 것. 이것이 필자가 생각하는 미래 의료의 방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