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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의 마지막 바다…진군의 북 울린 그때도 빛났겠지, 노량의 비경

남해 노량 유람선 탐방

  • 조봉권 기자 bgjoe@kookje.co.kr
  •  |   입력 : 2024-01-17 19:48:02
  •  |   본지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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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6년 전 충무공이 왜군 무찌른 뱃길
- 그 행적 따라 남해·이순신대교 등 돌아

- 적 착각하게 만든 관음포 절묘한 지형
- 전사한 장군을 처음 뭍에 모신 이락사
- 저 멀리 광양제철소·하동발전소까지
- 지금의 평화·안녕에 감사하게 한 풍경

토요일이던 지난 13일 한낮, 남해대교를 건너 경남 남해군 설천면 노량리 충렬사(남해 충렬사) 앞에 도착했다. 거북선전시관이 있는 남해 충렬사 앞 주차장에서 노량해협 건너 하동 쪽 언덕배기 마을을 바라보니 문득 생각이 들었다. 저 건너 높은 곳 예쁜 집까지만 올라가면 남해대교와 노량대교가 한눈에 들어오는 사진을 찍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다시 남해대교를 건넜다. 순식간에 남해군에서 하동군으로 또 갔다. 노량터널 위로 올라가 좁은 콘크리트 농로로 접어들었다. 차는 조심조심 기어 그 예쁜 집에 닿았다.

“우리집 오시는 손님인 줄 알았소. 다리 사진을 찍으러 왔다고? 그렇게 하세요. 편하게들 찍어요. 여기서는 밤에 찍으면 남해대교·노량대교가 참 예쁘게 나오는데. 그래, 어디서 오셨소? 부산 국제신문?” 집주인 부부는 불쑥 나타난 나그네 일행을 반겨주었다. 노량해협 쪽으로 카메라를 들이대자 눈에 들어온 건 평화였다. 노량 바다가 보였고 윤슬은 반짝였으며 다리는 아름다웠다. 새가 지저귀고 주인집 백구는 호기심에 차 나그네를 향해 콩콩 짖었다. 평화가 손에 잡혔다.
남해대교 유람선이 관음포 쪽으로 다가서자 언덕 위 숲속에 첨망정이 보였다. 이락사 가까운 곳에 세운 첨망정에서는 이순신 장군이 마지막으로 싸운 노량해전의 바다를 굽어볼 수 있다.
■유람선을 탈 거야

이번 여정을 경남 남해군 노량 쪽으로 잡은 건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나 이순신 장군과 관련이 적다고 하기도 힘들지만, 그렇다고 꼭 그 때문만도 아니다. 오래전 두어 번 스치듯 다녀온 노량의 정경은 불쑥불쑥 떠오르곤 했다. 벌써 1월 하순이니, 곧 봄기운이 들이닥쳐 동백이 붉게 떨어지고 유채가 피고 벚꽃이 터지면 ‘보물섬’ 남해는 진짜로 보물섬이 될 텐데, 미리 노량에 다녀와 보면 어떨까 하는 마음이 있었다. 영화와 장군은 그런 생각을 향해 진군의 북을 두드려 주었다.

‘남해대교 유람선’은 이번 여행지를 노량으로 결정하게 한 중요한 요소였다. 노량 여행 자료를 검색하다 알게 된 남해대교 유람선 홈페이지(www.namhaecruise.co.kr)에 들어가니 항로가 꽤 탐스러웠다. 요즘은 하루 한 차례 오후 2시에만 배가 떴다. 요금 2만 원. ‘대도(大島) 파라다이스’ 상륙 시간을 포함해 2시간 소요. 당장 인터넷을 통해 예약했다.

좀 일찍 도착해 아늑한 포구 마을인 노량의 정경 속에서 쉬거나, 남해 충렬사 앞에서 출발해 원점회귀하는 노량바래길(3.2㎞·약 1시간 소요)을 걷거나, 차를 몰고 근처 남해 관음포 이충무공 유적(이락사·李落祠) 일원을 둘러본 뒤 남해대교 유람선을 타는 동선을 짰다.

■평화와 풍요를 느끼네

출항 20분 전인 오후 1시 40분, 남해대교 유람선 해상랜드 매표소(남해대교 바로 아래다) 곁에 정박한 유람선은 문을 열었다. 손님이 일정 인원 이상 들지 않으면 출항하지 않을 수 있다는 문구를 인터넷 검색 도중 어딘가에서 본 터라 불안감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건 적어도 토요일 오후용 걱정은 아니었다. 적지 않은 승객이 탔고, 유람선은 부드럽게 출항했다. 다만, 매표소 직원이 “현재 대도 파라다이스는 접안시설 정비공사 중이어서 상륙하지 못한다”고 안내해 아쉬웠다. 왜 하필 오늘인가!

남해대교 아래를 지나 노량대교를 통과하자 바다 건너로 하동 포구와 하동화력발전소가 잇달아 가깝게 보였다. 안내방송에서 “바로 앞 가두리양식장은 숭어를 기른다. 하동 녹차를 먹이는 하동 녹차 참숭어이다”고 설명했다. 찾아보니 ‘하동 녹차 참숭어는 육질이 단단하고 쫄깃’ ‘11월에는 축제’ ‘겨울 진미’ 같은 자랑이 넘친다. 유람선은 광양제철, 이순신대교, 여수 여천공단의 위용까지 바다 위에서 볼 수 있게 해주었다. 한반도 남쪽 바닷가 고장은 힘차게 돌아가며 대한민국을 떠받치고 있다.

이윽고 배는 대도를 돌아 남해 관음포 이충무공 유적지 앞으로 나아갔다. 남해대교 유람선이 다니는 항로는 1598년 음력 11월 19일 이순신 함대가 도망치는 왜적 함대를 크게 쳐부순 노량대첩의 뱃길과 겹친다. 그때의 바다가 바로 이 바다다.
경남 하동군 쪽에서 바라본 남해군과 노량 바다. 남해대교(왼쪽)와 노량대교가 남해와 하동을 이어준다. 노량대교의 오른쪽으로 조금만 내려가면 남해 관음포 이충무공 유적이 있다.
■그때의 바다가 보여

남해대교·노량대교를 한 장면에 담기 위해 올라갔던 ‘예쁜 집’에서 남해 쪽을 굽어보며 만난 ‘평화’의 바탕을 이때 느꼈다. 의구한 산천, 빛나는 바다, 제철소·발전소·공단·대교·양식장이 뒷받침하는 풍요, 유람선 위 사람들의 평화. 이 모든 것의 밑바탕에 한 위대한 사람의 정성·노력·분노·분투·사랑이 있음을 생각했다. 물론, 그는 이순신 장군이다. 426년 전 겨울 바로 이 바다에서 장군은 도망치는 왜적을 철저히 때려 부수고 임진왜란·정유재란을 끝내버린 뒤 자신도 스러져갔다. 그 위로 지금의 이 평화와 풍요는 꽃을 피웠다.

배가 노량 곁 관음포 쪽으로 다가서자 ‘그때의 바다’는 더 잘 보였다. 기록에 보면 왜적 함대는 관음포 쪽으로 잘못 들어갔다가 퇴로가 막혀 이순신 함대(조선·명나라 연합함대)에 박살난다. 유람선 위에서 보니 진짜로 ‘저기 저쪽으로 빠져나가면 먼바다로 나갈 수 있겠다’고 곧장 착각할 수 있을 만큼 절묘한 지형이었다. 치열했던 그날 바다를 상상했다. 배 위에서 해안가 숲속 첨망대(瞻望臺)가 선명히 보였다. 첨망대는 이락사와 가까운 옛 건물이다. 이락사는 노량해전 그날 이순신 장군께서 전사한 뒤 처음 모셔진 뭍이며 오래된 유허비가 있다.

노량해전을 놓고 여러 의견이 있는 모양이다. 이순신 장군이 철저히 ‘군사전략’에 입각해 작전을 편 것은 분명하다. 지금 저 왜적을 고이 놓아 보내면, 정유재란이 그러했듯 언제 다시 조선으로 쳐들어올지 모를 일이었다. 장군은 저 거대한 왜적을 철저히 분쇄해야만 했다.

■이락사는 고즈넉했다

이순신 장군의 유허비를 모신 이락사.
노량해전이 끝나고 2년 뒤인 1600년 일본에서 세키가하라 전투가 벌어진다. 일본판 건곤일척(乾坤一擲), 최종 승패와 모든 흥망을 걸고 맞붙은 최대 규모 단판싸움이었다. 노량해전에서 왜군이 전함 수백 척과 엄청난 군사를 단숨에 잃은 현실은 과연 실질과 심리 측면에서 세키가하라 전투의 전개와 연관이 없었을까? 이순신 장군의 후손인 우리라면, 좀 더 공부와 연구의 지평을 넓혀가야 하는 것 아닐까? 유람선 위 나그네는 마음이 급해졌다.

횟집·식당·특산물가게·숙소가 옹기종기 자리한 노량 마을을 뒤로 하고, 가까이 자리한 남해 관음포 이충무공 유적으로 향했다. 여기에 조성한 이순신 순국 공원(최근 ‘이순신 바다 공원’으로 이름을 고침)은 흔쾌히 권하기는 힘들다. 밀린 숙제를 서둘러 계통 없이 일시에 해놓은 듯한 느낌이 아직은 강했다. 바로 곁 이락사와 첨망대가 훨씬 좋았다. 고즈넉한 분위기, 숲길, 곡진한 사연을 품은 바다를 보며 평화로움을 곱씹고 그 평화가 있게 한 분의 그날을 조용히 떠올렸다.


※남해대교 유람선 코스

노량 이순신 충렬사 출발 → 남해대교 → 노량대교 → 하동 → 광양만 → 이순신대교 → 난초섬 → 여수 → 노량해전 관음포 → 이순신 장군 순국지 이락사 → 환상의 섬 대도 상륙 →노량대교 →남해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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