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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소원의 시네 에피소드] 홍상수의 열세 번째 마술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2-06-14 18:36:55
  •  |   본지 3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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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의 영화는 감독의 이름을 지우고 봐도 누구의 영화인지 쉽게 알아챌 수 있다. '작가적 인장'이 선명하기 때문이다. 화가가 자신의 그림 오른편 하단 귀퉁이에 낙관을 찍거나 자신의 이름을 써넣듯이, 쇼트마다 감독 개인의 일관된 개성이 서명처럼 새겨진 영화를 만드는 감독에게 우리는 '작가'라는 칭호를 부여한다. 그 인장을 어떤 이들은 "맨날 똑같다"며 심드렁해하고, 어떤 이들은 작품 간의 미묘한 차이가 만들어내는 변주를 즐기며 예찬한다. 사실 식별할 수 없는 인장은 인장이 아니며 매번 다른 서명은 서명의 가치를 지니지 못하는 것 아닌가. 말하자면 나는 매번 홍상수의 마술에 홀리고 그것을 기적 같다며 감탄하는 일족(!) 중 하나다.

지난달 칸영화제에서 감탄과 극찬을 끌어낸 홍상수의 열세 번째 영화 '다른나라에서'가 (언제나처럼) 소규모로 개봉됐다. 현대 프랑스에 현존하는 가장 위대한 배우로 손꼽히는 이자벨 위페르가 주연을 맡아 더욱 화제가 된 이 영화는 위페르라는 거대한 변수를 홍상수의 고유한 세계 안에 영리하게 안착시킨, 예외적인 예시가 될 것 같다.

이제껏 스크린에 그저 서 있는 것만으로도 감독의 존재를 집어삼켜 버릴 정도로 독특하고 강력한 아우라를 지닌 이 배우는 홍상수의 세계로 와서 홍상수의 '인물 중 하나'가 되었다. 이 말은 홍상수의 다른 배우들처럼 출연료를 받지 않고, 매니저나 개인 스텝을 거느리지 않고, 자신이 참여한 영화가 정확히 어떤 이야기를 다루는 영화인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매일 아침 그날의 촬영대본을 받아 그 자리에서 소화해내야 한다는, 그런 의미를 넘어선다. 위페르의 페르소나에 기대지 않는, 난생처음 보는 위페르의 또 다른 면모가 여기에 있었다. 그 어떤 거물급 배우도 홍상수의 서명을 압도하거나 흐릿하게 할 수는 없는 모양이다. 그렇다고 해서 위페르의 재능이 발현되지 못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이 영화에서 그녀의 총총거리는 걸음걸이는 다른 영화에서 보아온 예민하고 불길한 그녀의 클로즈업 연기만큼이나 인상적이다.

이자벨 위페르는 칸에서 이뤄진 인터뷰에서 홍상수와의 작업을 "그 간소함, 신속함, 능란함을 생각하면 마치 꿈을 꾼 것만 같다"고 표현했다. 이 영민한 배우의 통찰력은 다음 말로 이어진다. "보통 다른 사람들은 영화를 찍을 때 아주 작은 결과를 얻기 위해 엄청나게 많은 것을 하는데, 홍상수는 아주 큰 결과를 얻어내기 위해 최소한의 것을 할 줄 아는 감독이다." 누군들 최소한의 것으로 최대를 얻고 싶지 않겠는가. 홍상수가 지금 하고 있는 것을 다른 감독들은 할 수 없을 뿐.

홍상수 스스로는 자신의 작업을 오른손잡이가 왼손으로 글을 쓰는 경험에 비유한다. 오른손으로 쓴 글씨가 이상적인 글씨체에 미치지 못하고 그냥 흉내만 낸 불만족스러운 것이라면, 왼손으로 쓰는 일은 어떤 규범(이상형)도 없이 그저 그림 그리듯 즐겁게 할 수 있다고. 그는 '다른나라에서'의 오프닝 크레딧을 왼손으로 직접 썼고 거기에 관한 질문을 자신의 작업 방식으로까지 확장해 설명하고 있었다. 언뜻 이상한 말처럼 들리지만 실은 절묘한 비유 아닌가. 홍상수는 지금 어떤 지표도 없는 영화를 만들고 있다. 제작 방식에서, 그 미학에서, 연기 연출에서. 왼손으로 '그린' 홍상수의 열세 번째 서명은 마술처럼 놀랍고 기적같이 아름다웠다.

영화평론가·부산대 영화연구소 전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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