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강소원의 시네 에피소드] 예술애호가용 타임머신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2-07-12 18:47:43
  •  |   본지 35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77세의 노(老)대가 우디 앨런의 마흔한 번째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는 우리가 언제나 품고 있었던 환상을 힘들이지 않고 시치미 뚝 떼고 눈 앞에 펼쳐 보인다. 약혼녀와 그녀의 부모님을 모시고 파리 여행을 나선 할리우드 시나리오 작가 길이 다소 속물적인 그들과 떨어져 호텔로 돌아가는 길을 잃고 파리 뒷골목의 어느 교회 앞 계단에 앉아 있을 때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려오고 길모퉁이를 돌아오던 고풍스러운 차 한 대가 멈춰 선다. 그 차는 타임머신이 되어 1920년대의 황금시대로 그를 데려다 놓는다. 그것도 그가 그토록 동경했던 피츠제럴드와 헤밍웨이 앞에.

자신이 사는 시대와 공간에 만족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주인공 길은 파리를 방문하는 게 아니라 거기에 다락방을 얻어 소설을 쓰면서 눌러앉고 싶어한다. 1920년대에 헤밍웨이가 그랬던 것처럼. 파리를 "우주에서 가장 멋진 도시"라고 주장하는 그의 말에 깊이 공감하는 나는 파리에 두어 달 머물면서 매일 이 미술관 저 미술관을 동네 산책하듯 다니는 한량 생활에 대한 판타지가 있다. 그게 내 삶에서 가당찮은 일이어서 오랫동안 환상으로 남겨져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결국 진정한 환상은 아직 경험하지 못한 위시리스트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실현 불가능성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닌가.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우디 앨런이 재현한 것은 바로 그런 판타지다.

얼떨결에 1920년대의 파리로 가게 된 주인공은 거기서 피츠제럴드와 헤밍웨이뿐 아니라 폴 포터, 피카소, 살바도르 달리, 만 레이, 루이스 브뉘엘, T. S. 엘리엇과 마주친다. 그 '전설'들 사이에 끼게 된 주인공은 헤밍웨이와 술잔을 기울이고, 스타인에게 소설 지도를 받고, 루이스 브뉘엘에게 영화적 영감을 주고, 피카소의 뮤즈와 사랑에 빠진다. 와우, 그의 환상은 실현되었고 이대로만 가면 그 또한 예술사의 레전드로 등극될 법하다. 그런데 주인공이 사랑하게 된 1920년대의 그녀는 1890년대를 황금시대라고 생각한다. 또 어찌어찌하여 그녀와 함께 1890년대로 거슬러 가게 된 그는 거기서 마티스, 로트렉, 고갱, 드가를 만난다. 그 화가들은 자신의 시대를 '벨 에포크'(좋은 시절)라고 생각할까? 자칫하면 르네상스기까지 거슬러가게 될 판이다.

영화에 등장한 인상주의 화가 사이에 고흐만 쏙 빼놓은 것은 (그가 일찍 죽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존재 자체가 영화의 흥겨운 톤을 자칫 심각하게 망쳐놓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고흐만큼 자신의 시대를 긍정하기 힘든 예술가가 또 있을까? 난세가 영웅을 만들어내듯이 시대에 몇 발자국 앞서 나간 예술가들은 대체로 저주받은 시대를 견뎌야 했다. 예술가들은, 위대한 예술가들은 시대와 불화한다. 사람들이 동경하는 좋은 시절이 언제나 과거의 어느 한 때인 것은 시대를 앞서간 예술가들의 비전이 미래의 우리를 향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예술애호가들을 위한 타임머신 '미드나잇 인 파리'는 예술가와 시대, 그리고 예술과 토양의 관계를 거듭 숙고하게 한다. 영화에서 시종일관 예찬되는 파리라는 낭만적인 공간은 이 막무가내의 판타지를 그럴 듯하게 설득한다. 그래서 말인데, 그 공간을 슬쩍 바꿔 한국 땅에 태어난 예술가들의 '벨 에포크'는 언제인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아무래도 그럴 듯한 답이 떠오르질 않는다. 아직 오지 않은 것인가.

영화평론가·부산대 영화연구소 전임연구원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5㎞ 출퇴근 길도 관용차로 모신다? 부구청장들 의전 논란
  2. 21년 새 담당 12명 교체…‘무한 민원’ 공무원 번아웃
  3. 36일 개막 BIFF도 ‘암살자(들)’ 후폭풍…레드카펫·무대 행사 줄취소
  4. 4나가기 싫은 부캉이…市 구조 멈추고 관찰키로(종합)
  5. 5부산·울산 국감 쟁점 된 전재수·김상욱…野 파상공세 태세
  6. 6재학생 48명 영도 절영초 통폐합 또 무산
  7. 7금융권 덮친 AI發 무차별 해킹…같은 IP 여러 곳 침투(종합)
  8. 8부산시의회 찾은 4선 김도읍, 생곡 소각장 반대 논리 읍소
  9. 9공은 웃었고 활은 울었다…경기운영·숙소는 빵점 대회
  10. 10작은 체격·부상 딛고 金 “LA올림픽서 그랜드슬램 이룰 것”
  1. 1부산·울산 국감 쟁점 된 전재수·김상욱…野 파상공세 태세
  2. 2부산시의회 찾은 4선 김도읍, 생곡 소각장 반대 논리 읍소
  3. 3국힘, 장외집회로 정부·여당 압박…민주 “張, 북치고 고함만”(종합)
  4. 4[속보] 李 대통령 지지율 37.4%.. 민주 42.5%, 국힘 38.4%
  5. 5李 대통령 “무책임 극단주의 ‘무극파’ 경계" 언급.. 인선 반발 의식했나
  6. 6[단독]서지영 “기보, 본사는 부산에 두고 부산 기업은 심각한 홀대"
  7. 7'좌아하게'? 다시 논란 부른 이 대통령 SNS 정치
  8. 8오세훈, 영화 암살자(들) ‘탄흔 티켓’에 “문화 품격 훼손”
  9. 9[속보]민주당, 국힘 집회에 “극우 유튜버들 박수 세례에 중독된 장동혁”
  10. 10與 “조희대, 국감 출석 불응 의사…불출석은 국회법 위반”
  1. 1금융권 덮친 AI發 무차별 해킹…같은 IP 여러 곳 침투(종합)
  2. 2신세계 센텀시티서 부산 대표 미식 브랜드 팝업
  3. 351억 예상 임대수입 다시 계산하니 29억? 사업성 검증 논란
  4. 4부산의 혁신 기업들, 지역발전 동맹 결성
  5. 5CU ‘리센느 빵’ 보름만에 60만 개 판매
  6. 6‘직원용 시스템’ 등 빈틈 공격…現 보안체계론 AI해킹 무방비
  7. 7나들이객 마음에 쏘~옥…유통가 의류·와인 행사 가을대전
  8. 8해운대 노을 보면서 명상…파라다이스호텔 오션힐링
  9. 9부산銀, 산업 전문성 더해 지역기업 금융 강화
  10. 10고속도로 휴게소 돈가스류 평균 가격 6년 새 27.5% 올라
  1. 15㎞ 출퇴근 길도 관용차로 모신다? 부구청장들 의전 논란
  2. 21년 새 담당 12명 교체…‘무한 민원’ 공무원 번아웃
  3. 3나가기 싫은 부캉이…市 구조 멈추고 관찰키로(종합)
  4. 4재학생 48명 영도 절영초 통폐합 또 무산
  5. 5오늘의 날씨- 2026년 10월 5일
  6. 6경기 7시간 전 입장해 쇼핑·식사…종일 즐기는 교세라돔
  7. 7기장 병산저수지 때 아닌 녹조…악취 진동
  8. 8AI로 지인 성착취물 제작 텔레그램 대화방에 유포, 잡고 보니 현직 경찰관(종합)
  9. 9[한 손 뉴스] 1400년 역사 동래온천지구…전국 네 번째 온천도시 지정
  10. 10책임 더 커진 경찰, 해킹 내사…‘사이버 1호 사건’ 가능성
  1. 1공은 웃었고 활은 울었다…경기운영·숙소는 빵점 대회
  2. 2작은 체격·부상 딛고 金 “LA올림픽서 그랜드슬램 이룰 것”
  3. 3아시안게임 폐막…한국 金 39개, 44년 만에 최소
  4. 4“의도한 거라면 안 좋다” 축구 금메달 시상식서 제때 오르지 못한 태극기
  5. 5AG 4연패 위업 축구 대표팀, 병역 관련 언행 논란
  6. 6스포츠클라이밍 서채현, 한국 선수단 폐회식 기수
  7. 7‘단체전 대역전극’ 펜싱 2관왕 오상욱, 한국선수단 MVP
  8. 8[속보] '짜릿한 역전극' 14세 최지운, AG 요트 소년부 금메달
  9. 9이우석, 양궁 리커브 남자 개인전 金…단체전까지 2관왕
  10. 10태권도 송다빈, 여자 67㎏초과급 금메달…겨루기 첫 金 수확
우리은행
부산 야구장 미래는
경기 7시간 전 입장해 쇼핑·식사…종일 즐기는 교세라돔
부산 야구장 미래는
야구 없는 날에도 팬·관광객 북적…도쿄돔 일대는 미니도시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