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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소원의 시네 에피소드] '경이로운 영국'의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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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2-08-16 18:47:32
  •  |   본지 3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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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간 TV 앞에서 보낸 시간이 지난 2년간 그것을 다 합친 시간보다 더 긴 것 같다. 평소 TV와 친하게 지내지 않는데다가 스포츠라면 직접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구경하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지라, 내게 올림픽은 그저 타인의 취향일 따름이었다. 그런데 나는 전형적인 올빼미 체질(내 시차는 날 때부터 런던에 맞춰져 있었다). 열대야의 고통을 피해 볼 겸 우연히 보기 시작한 올림픽에 그만 중독되고 말았다. 스포츠 서사의 재발견이라고나 할까.

스포츠는 구경거리에 환장하는 인간의 본능을 가장 원초적인 형태로 만족시켜주는, 스펙터클의 원형이다. 하지만 구경거리에도 히스토리와 맥락이 빠지면 그 즐거움은 오래가지 못한다. 진정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스포츠 그 자체나 승패 여부가 아니라 그 안에 새겨진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그중에서 가장 감동적인 것은 얼굴이다. 메달을 따든 못 따든 모든 선수의 얼굴에는 제각각의 드라마틱한 역사가 압축되어 있었다. 이건 스포츠에 문외한이 나조차도 이미 알고 있던 사실.

다른 올림픽과 달리 런던올림픽이 내게 특별한 인상을 남겼다면 그건 개·폐막식 덕분일 것이다. '트레인스포팅'과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감독 대니 보일이 총연출을 맡은 개막식은 처음에는 그 파격에 어리둥절했고(올림픽 개막식이 이래도 되나?), 다음에는 탄성이 흘러나왔다(자랑할 문화가 풍부한 영국이 부럽다!). 그간의 올림픽 개막식들은 규모로 압도하고 무게감에 치중한, 잘해봤자 장엄하고 엄숙한 의식이고 대체로는 국가 정체성의 노골적인 프로파간다에 가까웠다. 우리를 놀라게 할 수는 있지만 감동을 주지는 못하는 게 특징이라면 특징이겠다. 마치 서사 따윈 어찌 돼도 상관없다는 태도로 오직 때리고 부수는 것에만 몰두하는 텅 빈 블록버스터를 보는 기분이랄까.

런던올림픽의 개·폐막은 착안부터 차원이 다른 세리머니의 신기원을 열어 보였다. 무엇보다 여기엔 '서사'가 있다. 산업혁명으로 시작하여 무상의료제도의 기원을 밝히는 것으로 끝나는, 이 드라마엔 영국의 사회·정치·문화 전반에 걸친 역사가 녹아있었다. 노동과 복지라는 다소 딱딱한 테마로도 흥겨운 공연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자신감. 특히 그들 문화에 대한 영국인들의 자부심은 경이로운 수준이었는데, 마치 자랑할 게 너무 많아 숨 쉴 새도 없는 굉장한 수다꾼의 천일야화 같았다.

문학과 연극, 대중음악 등 다방면의 문화적 성취 중 유독 그들의 고개를 떨구게 하는 분야가 있다면 그건 영화일 것이다. 세계 영화사에서 영국영화는 다큐멘터리와 코미디의 전통 외에는 그들의 문화적 수준에 걸맞지 않은 미미한 흔적만을 남겼다. 거기서도 자랑거리를 찾아낸 그들은 개·폐막식에 그들 배우들을 불러 영국식 유머감각을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엘리자베스 여왕을 소개하는 그 깜찍한 오프닝이란. 드라마에 맞추어 춤추고 노래한다는 점에서 뮤지컬의 형식을 취한 개·폐막식은 360도 전방위 무대를 활용하여 각도에 따라 여러 개의 공연을 동시다발적으로 펼쳐냈다. 일사불란과는 거리가 먼 자유분방한 다양성의 찬미는 카메라 프레임의 한정된 틀을 넘어선다. 이처럼 파격적이고 영리한 그들의 국가적 드라마는 깊은 인상을 남겼지만, 아무래도 한일 축구전이 펼쳐진 카디프에서의 감동을 넘어서기는 어렵다. 거기엔 '우리의' 드라마가 있기 때문이다.

영화평론가·부산대 영화연구소 전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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