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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소원의 시네 에피소드] 서늘한 힐링 시네마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2-09-13 18:19:47
  •  |   본지 3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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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라는 단어에는 오글거리는 느낌이 붙어있다. 그래서 행복이라는 감정이 뭘 의미하는지 당최 모르겠다는 태도로 그 단어를 회피하다 보면 정말 행복 같은 건 아득하게 멀어지는 것 같기도 하다. 내게 행복의 이미지는 (혹은 그 개념은) 게으른 감독이 연출해낸 지극히 상투적인 장면으로 와닿는다. 약간의 실소를 동반하는 그 장면들은 대체로 "우리 이렇게 행복해요"라는 문장을 직설적으로 옮겨낸, 빈곤한 상상력과 뻔한 사탕발림의 결과물이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여성감독 아녜스 바르다가 1964년에 만든 자신의 영화에 '행복'이라는 단어를 떡하니 제목으로 내세웠을 때도 그랬다. '행복'이라니… 어쩌려고? 지금 영화의전당 시네마테크관에서 상영하고 있는 '아녜스 바르다 회고전'에도 포함되어 있는 이 영화는 바르다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그다지 끌리지 않는 제목에도 불구하고 일단 극장 문턱만 넘으면 나올 때는 뒤통수에 가해진 기분 좋은 일격으로 각성의 효과를 맛볼 수 있을 것이다.

'행복'은 예쁜 두 딸을 둔 아름다운 젊은 부부의 소풍 장면으로 시작된다. 화사한 색채, 넘치는 음악, 삶의 구김살 하나 없이 여유롭고 충만한 시간을 함께하고 있는 가족들. CF 광고에나 나올법한, 클리쉐로 도배된 이 장면은 그 완전무결함 탓에 우리의 의심을 산다. 그러고 보니 행복이라는 단어를 회피하려는 심리에는 뒤따라오기 마련인 불행에 대한 예감도 내포되어 있는 듯하다. 행복하다고 말하고 나면 그 다음에 올 것은 불행뿐이다. 영화는 그들 가족의 행복한 나날을 한참동안 묘사한 후 남편이 우체국 여직원과 또 다른 사랑에 빠지게 되는 국면으로 옮겨간다. 그럼 그렇지. 하지만 남편은 여전히 아내도 사랑한다. 그래서 아내에게 자신의 외도사실을 고백하기로 결심한다.

남편의 고백과 아내의 허락이 오가는 대화 신은 내게 다소 충격적이었다. 남편은 아내에게 죄책감을 고백했다기보다 다른 사랑에 대한 허락을 구했고 그녀는 "당신이 행복하다면"이라며 남편의 다른 사랑을 용인해주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아내의 시신이 호수에서 발견된다. 놀랍게도 영화는 아내의 빈자리에 남편의 애인이 들어와 첫 번째 시퀀스의 가족 소풍을 완벽하게 재현해내는 것으로 끝난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개봉 당시 프랑스 일간지는 "여기 행복을 영화로 만든 여자가 있다"며 비아냥댔고 심지어 바르다의 남편인 자크 드미 감독도 이 영화를 싫어했다. 당시 '행복'이 불러일으킨 논란은 바르다가 우리에게서 행복이라는 개념이 주는 심리적 위안을 빼앗아 버린 것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영화는 가부장제 사회의 행복을 재고하며 너의 행복이 곧 나의 행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고유한 나의 절대성은 언제든 다른 존재의 그것으로 대체 가능하며, 삶이란 원래 그런 것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바르다의 표현을 빌면 그것은 "즐겁지 않은 행복, 슬픈 것만도 아닌 불행"이다. "행복하고 또 불행하다"는 두 번째 아내의 대사도 이와 다르지 않은 말일 것이다.

확실히 이 영화는 잔인하다. 신문을 펴보기 두려울 정도로 흉악해진 우리 사회에, 행복이라는 개념이 미심쩍다는 얘기는 한갓 한담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내게 이 영화는 '서늘한' 힐링 시네마로 오래도록 남아있다.

영화평론가·부산대 영화연구소 전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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