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강소원의 시네 에피소드] '관객과의 대화' 시간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2-10-18 18:46:03
  •  |   본지 34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역대 최다 관객수를 기록하며 열일곱 번째 영화제가 막을 내렸다. 17년이라니 새삼 감개무량해진다. 특별하게 기억되는 해가 있고 무상하게 보냈던 해도 있지만 영화제라는 단어에는 변함없이 얼마간의 흥분과 설렘이 내포되어 있다. 영화제의 즐거움 중 으뜸은 무엇보다 좋은 영화를 만나는 것이겠지만 좋은 영화는 영화제가 아니어도 볼 수 있다. (영화제의 역설 혹은 걸작이라 불리는 영화의 운명은 살벌한 티켓 전쟁을 벌이던 영화제의 영화도 막상 개봉하면 찬밥 신세가 된다는 것이리라.) 영화 그 자체에 관한 이야기는 접어두고 여기서는 다소 부차적인 것, 혹은 지극히 사소한 것에서 생겨난 영화제의 즐거움을 말하고 싶다. 영화제가 아니면 경험할 수 없는 것, 영화를 매개로 우리가 나눌 수 있는 것. 말하자면 영화제가 좋은 이유다.

우선 사소한 것부터 언급하면, 영화제에서는 엔딩 타이틀이 끝날 때까지 객석 조명을 결코 켜지 않는다. 평소 엔딩 타이틀의 마지막을 고수하기 위해 청소하러 들어온 극장 직원의 따가운 눈초리를 감당해야 하는 것을 떠올리면 영화제는 마음 편한 영화천국이다. 이 소소하지만 중요한 원칙에는 영화에 대한 존중과 최소한의 예의가 담겨 있는데 그것은 영화가 끝난 후 객석에서 터져 나오는 박수소리에서 더 뭉클하게 다가온다. 그때 나는 즉각적으로 감동을 나눌 영화적 동지를 만난 듯한 반가움과 함께 우스꽝스럽게도 내가 감독이라도 된 양 어떤 감격에 젖곤 한다.

무엇보다 영화제가 좋은 결정적인 대목은 방금 본 영화의 감독을 그 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관객과의 대화'는 영화제에서 누릴 수 있는 가장 축복된 시간이다. 영화제 초기, 질문을 빙자하여 자신의 어설픈 감상을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는 것으로 금쪽같은 시간을 잡아먹고 다른 관객들의 하품과 짜증을 유발하던 자기과시형 관객은 이제 현저히 줄어들었고, 예리한 통찰력이 담긴 질문으로 감독을 감동시키거나 다른 관객들을 일깨우고, 비판적인 질문이라도 감독에 대한 존중과 예를 갖추어 세련되게 전할 줄 아는 관객들이 부쩍 늘어났다. 이 대화에도 17년의 역사가 쌓이니 관객의 내공도 날로 깊어져 실로 경탄할 만한 질문을 던지는 수준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를테면 좌파감독으로 알려진 일본의 와카마츠 코지의 우파 신작에 대해 어느 관객은 "당신의 사상과 배치되는 인물(미시마 유키오)을 다룰 때 당신의 정치적 신념은 영화와 어떻게 화해합니까?"라고 물었다. 많은 이들이 궁금해 했던 바로 그 의문에 감독은 느슨한 답변(통역의 문제였는지도 모른다)만을 내놓아 나는 그의 이전 영화들조차 몽땅 의심하게 되었다. 때론 순진한 질문에 놀라운 답변이 따르기도 한다. "당신 영화의 메시지는 무엇입니까?"라는 관객의 질문에 "나는 메시지를 전하려고 영화를 만든 것이 아닙니다"라는 중국 감독 왕빙의 간단명료한 대답은 내게 긴 생각거리를 던져주었다. 누군가는 이 대답이 무성의하다며 화를 냈지만 그 또한 몇 년 뒤엔 이 말의 의미를 되새기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 사회에서 영화제는 장 뤽 고다르가 주장하는 이미지 교육학이 이루어지는 가장 훌륭한 학습의 장이라 할 수 있다. 온갖 수치로 환원되는 영화제 평가에 매몰되어 우리가 쉽게 놓치곤 하는, 영화제의 비가시적인 성과 중 가장 높이 평가할 대목이 여기에 있다고 믿는다.

영화평론가·부산대 영화연구소 전임연구원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단독] 직원간 주먹다짐, 택시운전사 폭행…부산 공공기관 왜이러나
  2. 2[뉴스 분석] 혁신 설계로 파격 인센티브 잡아라…삼익비치 등 5곳 ‘군침’
  3. 3글로벌허브법, 22대 부산 여야 ‘1호 법안’ 발의
  4. 4가덕신공항 부지공사만 10조…주거래은행 누가 될까
  5. 5‘돗자리 클래식’ 향연…주말 시민공원 달군다
  6. 6“평생 피아노만 쳤는데…데뷔작 칸 초청돼 영광”
  7. 7광안 3구역 재개발 수주전…삼성물산 입찰제안서 제출
  8. 8학교 급식실 골병의 근원 ‘14㎏ 배수로덮개(그레이팅)’ 무게 줄인다
  9. 9“군대 보내기 무섭다” 부대 사망사고 年 100여건 집계
  10. 10[근교산&그너머] <1383> 경북 영천 채약산
  1. 1글로벌허브법, 22대 부산 여야 ‘1호 법안’ 발의
  2. 2부산시의회 ‘뿌리산업 연구모임’ 정책 개발 시동
  3. 3尹, 4개 쟁점법안 거부권…‘세월호법’만 수용
  4. 4이재명 “민생지원금 25만 원 차등지원도 수용하겠다”
  5. 5尹, 채상병 사건 이첩날 이종섭과 3차례 통화…野 “외압 스모킹건”
  6. 6“민생·정책정당 집중” 22대 국회 앞 與 결의
  7. 7“오 마이 프렌드” UAE대통령·이명박 16년 우정 화제
  8. 8與 “검토·합의 없는 3無 법안”…野 “거부병 걸린 대통령”
  9. 9[속보]북, 오물 풍선 도발 이어 탄도미사일 발사
  10. 10국회 떠나는 김두관·박재호·최인호…PK 민주당 재건 주력할 듯
  1. 1[뉴스 분석] 혁신 설계로 파격 인센티브 잡아라…삼익비치 등 5곳 ‘군침’
  2. 2가덕신공항 부지공사만 10조…주거래은행 누가 될까
  3. 3광안 3구역 재개발 수주전…삼성물산 입찰제안서 제출
  4. 4일광 노르웨이숲 오션포레- 리조트형 하이엔드급 아파트…휴가 같은 일상 집에서 즐겨라
  5. 5코스닥 현금배당 1위 리노공업, 455억 풀었다
  6. 6건설업계 만난 금감원장 “PF 부실정리 미루면 대형업체도 못 버텨”
  7. 7동국씨엠, 獨 에쉬본에 지사…‘부산 K-강판’ 유럽 누빈다
  8. 8“2030년 극지운항 400조 예상…방한기술 개발 서둘러야”
  9. 9삼성전자 노조 첫 파업 예고
  10. 10부산·울산 중소기업 경기 언제쯤 볕드나
  1. 1[단독] 직원간 주먹다짐, 택시운전사 폭행…부산 공공기관 왜이러나
  2. 2학교 급식실 골병의 근원 ‘14㎏ 배수로덮개(그레이팅)’ 무게 줄인다
  3. 3“군대 보내기 무섭다” 부대 사망사고 年 100여건 집계
  4. 4여아 성추행 혐의 무자격 원어민 강사 구속(종합)
  5. 5‘김건희 수사’ 서울중앙지검 1차장에 박승환
  6. 6“히말라야 8000m 신루트 개척한 강연룡 기려야”
  7. 7손녀 둘의 조손가정, 안전한 주거위한 도움 필요
  8. 8오늘의 날씨- 2024년 5월 30일
  9. 930일 부산·울산·경남 대체로 흐림…낮 최고 24∼28도
  10. 10사상~해운대 대심도(지하 고속도로), 착공 3년 늦어진다
  1. 1소년체전 부산골프 돌풍…우성종건 전폭지원의 힘
  2. 2박세웅 마저 와르르…롯데 선발 투수진 위태 위태
  3. 3명실상부한 ‘고교 월드컵’…협회장배 축구 31일 킥오프
  4. 4한국야구 프리미어12 대만과 첫 경기
  5. 5연맹회장기 전국펜싱선수권, 동의대 김윤서 사브르 우승
  6. 6낙동중(축구) 우승·박채운(모전초·수영) 2관왕…부산 23년 만에 최다 메달
  7. 7“농구장서 부산갈매기 떼창…홈팬 호응에 뿌듯했죠”
  8. 8호날두 역시! 골 머신…통산 4개리그 득점왕 등극
  9. 94연승 보스턴 16년 만에 정상 노크
  10. 10오타니, 마운드 복귀 염두 투구재활 가속
우리은행
부산 스포츠 유망주
체격·실력 겸비한 차세대 국대…세계를 찌르겠다는 검객
부산 스포츠 유망주
타고 난 꿀벅지 힘으로 AG·올림픽 향해 물살 갈라
  • 국제크루즈아카데미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