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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소원의 시네 에피소드] 제임스 본드의 추락과 부활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2-11-08 18:44:26
  •  |   본지 3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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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이 된 이래 극장 발길을 끊은 007 시리즈를 다시 볼 마음이 생긴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꽤나 느리고 무거운 영화를 보고서 극장 출구 복도를 걸어 나오는데 때마침 다른 상영관 출구가 활짝 열리며 엔딩곡이 흘러나왔다. "띵디리딩딩 딩딩딩딩…"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영화주제곡이 흘러나오는 극장 문 앞에 돌연 멈춰서서 제임스 본드 테마곡에 듣고 있노라니 스크린으로 보고 싶은 마음이 절로 생겨났다. 50주년이라는데, 벌써 23번째 영화라는데…. 숀 코네리와 로저 무어 시대의 007만을 기억하는 불충실한 관객인 나는 영화 역사상 가장 긴 이 시리즈 영화의 생명력이 어디에 있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그토록 오랫동안 007 시리즈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은 스파이영화 장르에서 007은 이미 구시대의 유물 같은 것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냉전시대는 끝났고 강한 테스토스테론을 과시하던 마초의 시대도 끝났다. 말하자면, 턱시도를 빼입고 느물거리는 태도로 성적인 농담을 하고 마티니를 마시고 카지노를 들락거리며 여자를 유혹하던 고전적인 스파이 제임스 본드는 오늘날 산뜻하고 영리하고 현대적인 스파이 제이슨 본('본'시리즈)과 이던 헌트('미션 임파서블'시리즈)에 밀려 퇴물 명단에 오르기 직전이었다. 변화하지 않으면 사라져야 할 운명이었다.

50주년 기념작이자 시리즈의 23번째 영화인 '007 스카이폴'은 이 운명을 정면으로 직시한 자리에서 시작한다. 반세기의 역사를 끝으로 이 자리에 묘비명을 새길 것인가 아니면 다음 반세기의 이정표를 세울 것인가를 두고 쇄신할 수 있는 것은 모조리 손보겠다는 각오가 엿보였다. 의미심장하게도 오프닝 시퀀스에서 제임스 본드는 죽음에 이르렀다가 한참 후에야 돌아온다. 그 사이 영국 정부는 '00번으로 시작하는 요원들은 더이상 불필요한 시대'라고 선언하고, 본드의 상관인 M은 임무 완수를 위해 냉혹한 명령을 내려야 했던 '자신의 죄'를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본드걸은 있지만 할머니뻘인 M에게 주연 자리를 내주어야 했으며, 조직 내부에서 태어난 악당은 세계를 위협하는 대신 사적인 복수를 꿈꾼다.

무엇보다 6대 제임스 본드가 된 다니엘 크레이그가 눈부시다. 역대 본드들의 몸에 배인 기름기를 빼고 허세도 버린 그는 21세기에 걸맞는 새로운 스파이 유형을 제시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신체검사도 통과하지 못한 채 '저질 체력'이라며 악당에게 조롱당하고 동료에게 '늙은 개'라는 농담도 듣지만 이제껏 한번도 보지 못한 방식으로, 누구보다 멋지게, 땅에 발을 딛고 선 최초의 제임스 본드가 되어 돌아왔다.

"장르의 변화는 관객들이 '믿어 주기에는 형식이 너무 유치하다. 보다 복잡한 것을 보여 달라'라고 말할 때 생겨난다"고 한다. 일찍이 스파이영화의 원형을 제시하고 그 자체로 하나의 장르가 된 007 시리즈는 거의 마지막 순간에 극적으로 '부활'에 성공했다. 영화제목처럼 하늘에서 추락하는 제임스 본드로 시작하여 극중 대사대로 자신의 장기인 '부활'에 이른 이 영화는 단순한 클리쉐로 점철된 고전적 형식에서 보다 복잡하고 자기반영적인 현대적 형식으로 탈바꿈한 기점으로 기억될 것이다. 여기엔 '아메리칸 뷰티'와 '레볼루셔너리 로드'의 감독 샘 멘더스와 코엔 형제의 촬영감독 로저 디킨스의 공헌이 9할이다. 낡은 프랜차이즈 영화의 혁신이 실로 놀랍고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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