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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메디클럽

고즈넉한 고택서 즐기는 사색…오래 보니 더 예쁘구나

의령 백산생가·곽재우생가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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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탐진 안씨 집성촌 입산마을
- 안희제 생가와 종택·고택 등
- 40가구 호젓하게 모여 있어

- 낡고 닳은 서까래·툇마루
- 황토에 돌 쌓아 올린 담장
- 잘 관리된 뜰과 대숲 인상적

- 발품 조금이면 연못 품은 상로재
- 호암 생가 ‘부자길’ 트레킹 코스도

- 1.5㎞ 떨어진 거리의 세간마을
- ‘홍의장군’ 의병장 곽재우 생가
- 500살 넘긴 천연기념물 은행나무
- 북 걸어두던 느티나무 ‘현고수’도

‘인재 양성의 필요는 어느 시대와 어느 사회인들 급하지 않으리오만, 오늘날과 같이 급하고 절실한 때는 또 없다’. 독립운동가인 백산 안희제 선생이 1919년 11월에 독립운동에 몸 바칠 인재를 키우기 위해 기미육영회를 조직하면서 쓴 취지문의 한 부분이다. 부산에 백산상회를 설립한 선생은 언론과 교육으로 범위를 넓히며 독립운동에 몸 바쳤다. 이후로도 만주와 국내를 오가며 활동한 선생은 수감 생활 중 받은 고문 후유증으로 해방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떴다. 경남 의령 백산 생가가 있는 입산마을과 곽재우 생가가 있는 세간마을을 찾았다. 요즘 바깥나들이를 거론하기가 어려운 시기이다. 그렇지만 당장 3월이 아니더라도 이 어려운 시기를 견뎌낸 뒤 언제든 찾아가 보자. 백산 생가뿐만 아니라 고즈넉하고 조용한 고가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고목을 여유롭게 둘러봐도 좋다.
   
경남 의령군 부림면 입산마을의 중심에 있는 탐진 안씨 종택. 잘 관리된 뜰을 지나 안채를 돌아 오르면 대나무 숲 앞에서 마을 전경을 감상할 수 있다.
■소박한 백산 생가와 입산마을

의령읍에서 20번 국도를 따라 창녕으로 가다 보면 도중에 북쪽으로 달려 낙동강에 합류하는 유곡천과 만난다. 세간교를 건너 오른쪽으로 가면 유곡천과 접한 부림면 입산리 입산마을이 나온다. 마을 입구에는 도로 양쪽으로 굵은 느티나무 두 그루가 방문객을 맞는다. 도로 오른쪽에는 ‘입산마을을 빛내신 인물들’ 일곱 분의 이름과 업적을 새겨 두었다. 백산 선생과 함께 임진왜란 때 의병 활동을 한 안기종, 독립운동가 안준상 등의 이름이 나란히 있다.

   
마을은 해발 200m를 살짝 넘는 장백산을 서쪽에 병풍처럼 두고 동쪽으로는 논과 도로를 지나 유곡천을 바라본다. 17세기 초에 이주해와 10대를 이어온 탐진 안씨 집성촌인 입산마을에는 40가구 정도가 있는데 남북으로 긴 마을의 북쪽에 백산 안희제 생가와 탐진 안씨 종택을 비롯해 고택이 모였다. 작은 마을이지만 경남 문화재로 지정된 건물이 다섯 채 있다. 백산 생가와 탐진 안씨 고택, 안준상 고택, 안호상 고택, 안범준 고택이다.

담장을 두르고 마당이 있는 입산마을회관 앞을 지나 논을 옆에 두고 마을 길을 걸으면 가장 먼저 안호상 고택이 나온다. 새로 지은 아래채와 협문 뒤로 1911년에 지은 안채가 들어앉았다. 역시 20세기 초에 지은 마당 넓은 안범준 고택의 좌우 골목으로 올라가면 탐진 안씨 종택과 안준상 고택이 완만한 비탈에 자리 잡았다. 황토에 돌을 쌓은 담장은 마당이 보일락말락 하는 딱 그 정도의 높이다. 종택은 잘 관리된 뜰과 집 뒤의 대나무 숲이 인상적이다. 대나무 숲 앞 벤치에서는 유곡천과 마을 앞 들판이 한눈에 들어온다. 담장을 넘어온 매화가 막 꽃망울을 터트린다.
   
탐진 안씨 종택에서 바라본 입산마을.
네 곳의 고택을 지나 모퉁이를 돌면 널찍한 주차장 건너 역시나 야트막한 담장을 두른 백산 생가가 모습을 드러낸다. 마당 깊은 집에는 초가 뒤로 백산고가란 현판을 건 사랑채가 서 있다. 생가는 1990년대에 복원한 것이다. 이곳을 찾은 날은 토요일 한낮이었는데도 주차장은 한산했다. 습기를 머금은 마당의 흙을 밟으며 여유롭게 둘러보는 동안에도 바람 소리, 새 소리만 들린다. 여기서 조금 발품을 더 팔아 북쪽 산비탈의 상로재도 들러보자. 작은 연못을 앞에 품은 상로재는 백산 선생이 교육 사업을 벌인 창남학교로 쓰였던 곳이다.

   
초가와 기와집이 나란히 있는 백산 생가.
의령읍에서 백산 생가를 찾아가는 길 중간쯤의 정곡면 소재지에는 호암 이병철 생가를 알리는 큼지막한 표지판이 설치돼 있다. 생가는 물론 부자의 기를 받으라고 호암 생가를 포함해 만든 트레킹 코스인 부자길을 찾는 이도 적지 않다. 의령 출신 부자들의 생가를 찾는 길에 또 다른 부자이자 ‘명문가’인 백산의 생가를 빠트리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다.
   
입산마을에 이웃한 세간마을 입구에 500년 세월을 견디고 선 현고수.
■임란 때 의병 불러 모았던 현고수

입산마을 남쪽 20번 국도가 유곡천과 만나는 지점에서 다리를 건너면 역시 산자락에 자리한 세간마을이 나온다. 입산마을과는 고작 1.5㎞ 정도 떨어졌다. 세간마을에는 홍의장군으로 더 잘 알려진 의병장 곽재우의 생가가 있다. 마을 북쪽 끝에 있는 곽재우 장군의 생가는 근래 복원했고 이 일대에 곽재우장군문화공원을 꾸며놓았다. 이 마을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나무가 두 그루 있는데 하나는 곽재우 생가 앞의 제302호 세간리 은행나무이고 다른 하나는 마을회관 앞의 제493호 세간리 현고수다.

   
곽재우 장군의 생가와 공원도 찾을 만하지만 근래 꾸며놓은 곳이다. 오히려 두 그루 나무를 지나치지 않도록 하자. 통상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나무는 지명과 수종을 더해 부른다. 그런데 세간리 느티나무는 현고수(懸鼓樹)라는 이름을 따로 얻었다. 임진왜란 때 전국에서 가장 먼저 의병을 일으킨 곽재우 장군이 이 나무에 북을 걸어 매고 두드려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는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실제로 마을회관 앞에서 보면 ㄱ자로 구부러져 북을 걸었음 직하게 생겼다. 지금은 세월을 이기지 못해 중심부에 휑하게 구멍이 났다. 은행나무는 느티나무와 마찬가지로 500살을 훌쩍 넘겼다. 마을 수호신으로 모시는 은행나무의 남쪽으로 뻗은 굵은 가지에는 아래로 툭 튀어나온 짧은 가지 두 개가 있는데 산모가 젖이 안 나올 때 이곳에서 치성을 드렸다고 한다.
   
곽재우 생가와 천연기념물 은행나무.
   
뜰의 나무가 인상적인 안준상 고택.

◆부산 용두산공원서 백산 선생의 자취를

백산 안희제 선생을 이야기할 때 부산을 빼놓을 수 없다. 백산 선생이 독립운동을 지원하기 위해 1914년에 세운 백산상회가 자리했던 곳이 지금의 부산 중구 동광동 용두산공원 동쪽 기슭이다. 옛 백산상회의 모습은 사라졌지만 그 자리에 백산기념관이 들어섰다. 도로명주소도 백산길 11로 붙었다. 부산영화체험박물관보다 한 블록 아래 한성1918 부산생활문화센터와 마주 보고 있다. 한적한 이면도로에 접한 기념관 입구를 들어서면 계단을 통해 한 층 아래로 내려간다.

   
용두산공원 부산타워 입구의 백산 선생 흉상.

입구에 백산 흉상이 선 전시실은 원형으로 한 바퀴 돌며 관람할 수 있는 작은 공간이다. 백산상회 주주 명단과 백산 선생이 몸담고 언론 활동을 했던 신문사가 1930년대 발간한 지면, 백산상회 광고가 실린 1918년 매일신보 지면 등 알찬 자료가 전시됐다. 또 백산을 비롯한 여러 독립운동가의 활동상을 담았다. 그의 이야기를 담은 책자들과 1956년 마련한 백산 안희제 선생 추모제전 제문 등 해방 이후의 자료도 상당수다.

백산기념관 앞 도로변, 표지석 왼쪽에는 다섯 갈래로 가지를 뻗어 올린 모과나무가 있다. 나무 앞 작은 오석에 백산을 기리고자 백산 생가에 있던 이 나무를 옮겨 심었다고 새겨두었다. 월요일 휴관.

백산기념관에서 나와 부산영화체험박물관 왼쪽 계단을 오르면 곧바로 용두산공원이다. 충혼비와 한복체험관 아담을 지나면 공원 광장에서 부산타워로 가는 오르막길이다. 길 입구 자연보호헌장비 맞은편에 백산안희제선생상이 서 있다. 평소 관광객으로 번잡한 곳이라 예사로 지나치기 쉽다. 용두산공원을 찾는 길에 일부러라도 그를 찾아보자.


글·사진=이진규 기자 ocean@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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