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2년 대선 앞 부산시장 등 식사모임
- 지역감정 조장 모의, 불법도청 탓 탄로
- 사건뒤 업주 살인협박·악성루머 시달려
- “선거 땐 심장 벌렁, 정신과 약 먹었죠”
- 3대째 가업… 복깐풍기 등 메뉴 개발도
우리나라 정치사에 유일하게 식당 이름이 들어간 사건이 있다. ‘초원복국 사건’. 제14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지역감정을 일으켜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고 한 사실이 도청에 의해 드러난 사건이다. 사람들은 일이 일어난 식당의 이름을 따 불렀다. 그마저도 ‘초원복집’ 또는 ‘초원복국집’ 사건이라고 정확하지 않게 호명할 때가 대부분이었지만. 원치 않게 정치사에 자신의 이름을 남기게 된 이 식당이 부산에 있다. 남구 대연동 ‘초원복국’. 사건 이후 대통령이 6번 바뀌었지만, 식당은 변함없이 그날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어두운 역사의 한 페이지에 자신의 이름을 뺏겼지만 묵묵히 30년째 대를 이어가는 부산의 식당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선거 때만 되면 심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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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남구 대연동 초원복국 대연본점 앞에서 초원복국을 운영하는 백경희(오른쪽부터), 김동식 씨와 그의 아들 김호철 씨가 웃으며 사진을 찍고 있다. 전민철 기자 |
초원복국은 부산 최초로 복어 조리사 자격증을 딴 김동식(65) 씨와 그의 아내 백경희(60) 씨 부부가 운영하는 식당이다. 최근 방문한 초원복국 대연본점엔 당시 사건이 일어났던 지하방이 여전히 있었다. 백 씨는 지상에 반쯤 걸친 창문을 가리켰다. “저기 유리창과 부엌 바깥쪽 담벼락 쪽에 도청장치를 각각 놓아뒀다고 하더라고요. 손님이 밥 먹으러 와서 도청 장치를 설치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할 수 없었죠.”
사건 직후 호기심에 찾아오는 손님은 늘었지만, 식당에 걸려온 전화 10통 중 9통은 욕설과 공갈, 협박이었다. 김 씨는 “‘부산 바닥에서 장사해 먹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냐’ ‘몰살시키겠다’ ‘폭발물을 설치하겠다’는 등의 협박성 전화가 걸려오는 통에 집이 아닌 다른 곳으로 피신하고 경찰에 신변 보호 요청까지 했다”고 회상했다. 당시 초등학생이던 아들을 해치겠다는 말까지 나와 아이만 따라다니는 사람을 붙일 정도였다.
부부를 괴롭힌 건 또 있었다. ‘가짜 뉴스’다
“내가 요정 출신이니 누구 첩이니 하는 악성 루머가 돌고 잡지책들에 사실이 아닌 기사가 실렸어요. 나는 요정 문 앞에도 안 가봤고 요정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고 사는 사람인데…. 경북 상주 출신인 우리 신랑이 전라도 출신이라 하고. 공갈 협박에 악성루머, 온갖 더러운 소리까지 말도 못 했어요. 한동안 정신과에 다니면서 약을 먹었어요. 아침마다 가슴이 탁 막히더라고요. 말이 말을 만들까 봐 사회생활도 일체 끊었어요. 이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나는 선거 때만 되면 누가 초원복국 얘기만 해도 심장이 벌렁벌렁합니다.” 백 씨가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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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방에서 아버지 김동식(왼쪽) 씨가 음식을 준비하는 아들 호철 씨를 지켜보고 있다. |
김 씨는 “대선이 끝나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니 김영삼 대통령 당선에 일조했다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전화가 잠잠해졌다. 한동안 관광버스를 탄 손님이 밀려들고 식탁 위의 성냥통까지 기념품이 될 만한 건 다 가져가기도 했다. 자니윤쇼를 비롯해 방송 출연 요청을 받기도 했지만, 손님들이 구속되고 경질됐는데 장사 이야기를 한다는 게 용납이 안 돼 거절했다. 우리가 한 게 아니라도 미안했다”고 했다.
백 씨는 “당시에 그 사건에 대해 말해달라는 방송사에 내가 30년 뒤에나 보자고 했는데, 정말 그날이 올 줄이야”며 웃었다.
■3대째 가업 잇는 부산 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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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이 일어난 지하방에서 백경희(오른쪽) 씨가 기자에게 당시 이야기를 하고있다. 사건 당시 좌식 구조였으나 몇 년 전 입식으로 리모델링했다. |
초원복국은 3대째 가업을 잇고 있다. 작고한 김 씨의 부친은 1950년대부터 남포동에서 오랫동안 일식집을 운영했다. 김 씨는 아버지 가게에서 일을 하면서 복의 매력에 빠졌다. “복 자체가 기름기 없이 담백한 건강식품이라 대중화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재료도 은복·밀복·까치복·참복으로 세분화하고 복수육 복찜 복불고기 복샤브샤브 복튀김 등 다양한 메뉴도 개발했죠.”
1983년 연산동에 처음 ‘초원복국’이란 이름으로 가게를 열었다. 1986년 영도로 이전했다가 1991년 지금 자리로 옮겼다. 김 씨는 “사건 뒤 전국에 복식당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프랜차이즈·체인점 제안이 많았지만 하지 않았다. 집사람이나 저나 장사 욕심이 없었다”고 웃었다. 백 씨는 “우리처럼 잘 되면 다행인데 안 되면 그 사람 아픔은 어떻게 할 거냐고 하지 말자고 했다”고 말했다. 초원복국은 백 씨가 대표인 대연본점, 아들 호철 씨가 대표인 범일점, 김 씨의 형제들이 맡은 영도·해운대·김해 장유점만 운영하고 있다. 어느 식당보다 이름이 알려졌지만 여느 식당처럼 방송 출연 사진이나 유명인사의 사인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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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원복국의 복지리. 국을 끓인 냄비째 들고 와 손님 앞에서 대접에 덜어준다. 복국을 끓을 때 넣은 콩나물을 따로 건져내 양념장을 넣고 무친 콩나물 무침도 별미. |
김 씨는 초원복국의 비결로 좋은 복을 쓰는 것을 꼽는다. 그는 “기본 재료가 좋아야 맛이 있다. 국물도 복 고유의 맛을 내기 위해 다시마 무 파 딱 세 가지만 넣는다”고 했다. 김 씨의 아들 호철(36) 씨도 현재 초원복국 범일점에서 일하고 있다. 2011년 대학가요제에도 참가했던 래퍼 출신이지만, 30살이 되면 가업을 잇겠다는 약속을 지켰다. 2015년 본점 막내 일부터 시작해 2년 전부터 범일점 운영을 책임지고 있다. 호철 씨는 젊은 세대 입맛을 겨냥해 복마늘마요·복깐풍기 등 범일점에서만 선보이는 메뉴도 개발했다. 그는 “할아버지, 아버지가 이어온 일에 누가 되지 않으려고 누구보다 더 열심히 했다”면서 “초원복국이라는 브랜드를 더 알리고 중국 진출도 추진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대표 자리를 맡기고도 지금까지 매일 아침 범일점에서 육수 간, 재료 손질 등 모든 것을 체크한다. 아들은 “제가 가수의 꿈을 포기할 때 아버지가 내가 칼을 잡으면 얼마나 더 잡겠냐고 하셨는데, 아직 내려놓으실 생각이 없는 것 같다”며 웃었다. 아버지는 “더 배워야 한다”고 아들을 다그치면서도 “우리 부부보다 진취적인 아들 모습을 보면 대견하다”고 귀띔했다.
※초원복국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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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12월 24일 초원복국에서 열린 현장검증에서 도청 실무자 전 현대중공업 직원 문종렬 씨가 지하방 창문에 녹음기를 숨기는 장면을 재연하고 있다. 아래쪽 사진은 같은 장소에서 검사의 지시에 따라 당시 행동을 재연하고 있는 김영환 전 부산시장(오른쪽에서 두번째). 국제신문DB |
1992년 12월 11일 부산 남구 대연동의 ‘초원복국’에서 두 달 전 법무부 장관에서 물러난 김기춘 씨와 당시 부산시장을 비롯해 교육감, 지검장, 안기부 지부장, 경찰청장, 기무부대장, 상공회의소 회장 등 부산지역 기관장이 모여 민주자유당 대선후보 김영삼을 당선시키기 위해 지역감정을 부추기자고 모의한 것이 통일국민당 관계자의 도청에 의해 드러난 사건이다. 이 사건은 대통령 선거를 사흘 앞둔 1992년 12월 15일 국민당의 폭로로 알려졌다. 당시 공개된 녹취록에 따르면 김 전 장관은 “믿을 곳은 부산 경남이 똘똘 뭉치는 것밖에 없다”, “부산 경남 사람들 이번에 김대중이 정주영이 어쩌냐 하면 영도다리 빠져 죽자”, “민간에서 지역감정을 좀 불러일으켜야 돼” 등의 발언을 했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말이 대명사처럼 알려져 있지만 실제 녹취록에는 포함돼 있지 않다. 초원복국집·초원복집 사건이라고도 불린다.
박지현 기자 anyway@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