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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려들어갈 듯 스크린 속 시공간 변주…놀란의 메시지는 ‘전쟁 속죄’

영화 ‘오디세이’ 관전 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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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서울 영등포구 타임스퀘어에서 열린 영화 ‘오디세이’ 레드카펫 행사에서 감독과 주연배우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배우 맷 데이먼, 샤를리즈 테론, 엠마 토마스 프로듀서. 연합뉴스
- 사상 첫 아이맥스 필름 전체촬영
- 영웅담 아닌 비극에 대한 참회록
- 13번째 장편도 시간 비틀기 묘미
- “올리브영 쇼핑? 아들여친 한국계”

현존하는 감독 중에서 가장 영화를 잘 찍는 이는 누구일까. 정답은 없다. 잘 만든다는 개념 자체가 주관적이기에, 의견이 하나로 모이기 힘들다. 그러나 당대 가장 영향력 있는 감독을 뽑으라고 하면 대다수가 이 이름을 거론할 것이다. 크리스토퍼 놀란이다. 존재 자체가 브랜드인 감독. 콧대 높은 초대형 스튜디오도 납작 엎드리게 하는 사람. 놀란의 열세 번째 장편영화 ‘오디세이’가 5일 한국에 착륙했다. 알아두면 쓸모 있을 관전포인트를 전한다.

■서구 서사극의 모태 ‘오디세이아’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신작 ‘오디세이’의 한 장면. 호메로스의 대서사시 ‘오디세이아’를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영화 전체를 70㎜ 아이맥스(IMAX) 필름으로 촬영하는 최초의 시도로 화제가 됐다. 유니버설 픽쳐스 제공
‘오디세이’는 인류 최고의 대서사시로 기록된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를 원전으로 한 작품이다. 트로이 전쟁을 노래한 ‘일리아드’에서 이어지는 이야기로, 전쟁을 승리로 이끈 오디세우스가 고향으로 돌아가기까지 10년 동안의 모험담을 그린다. 오디세우스는 그 유명한 ‘트로이의 목마’를 고안해 그리스 연합에 승리를 안겨준 지략가다.

호메로스의 서사시는 그동안 다양한 영화로 각색된 바 있다. 대표적인 게 커크 더글러스가 주연한 고전 사극 ‘율리시즈(오디세우스의 로마식 이름)(1953)’다. 랄프 파인즈 주연의 2024년작 ‘더 리턴’ 역시 서사시의 마지막 부분을 각색해 관객을 만났다. ‘오디세이아’를 모티브로 영화화된 작품도 많다. 코엔 형제의 ‘오! 형제여 어디에 있는가?’(2000)가 그 예다. 코엔 형제는 그들 특유의 익살로 ‘오디세이’를 재해석했다. ‘오디세이아’는 서구 서사극의 모태로도 평가받는데, 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1968)가 그랬듯 여정(journey)을 서사로 한 영화들에 영감을 줬고, 지금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아이맥스는 무엇이 다른가!

‘오디세이’는 영화 역사상 최초로 70㎜아이맥스(IMAX) 필름으로 영화 전체가 촬영됐다. 놀란은 ‘다크 나이트’에서 상업영화 최초로 아이맥스 필름 촬영을 시작한 후 모든 장편에서 아이맥스 필름 촬영을 적극적으로 해왔는데, 이번엔 아예 통째로 모험을 시도했다. 필름이 사라지고 AI로 만든 영화가 우후죽순 나오는 시대에 놀란은 오디세우스처럼 주어진 운명에 굴복하지 않은 셈이다.

아이맥스 카메라로 찍은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은 남다른 화면 크기다. 보통의 카메라로 찍은 영화보다 위아래가 넓다. 특히나 세로가 커져서 시야를 꽉 채우는 몰입감을 안긴다. 이 포맷을 수용하는 게 바로 아이맥스 상영관이다. 일반관에서 틀 경우 화면의 위아래가 잘려 나가기에 감독이 의도한 그림이 훼손된다. 가령, 주인공과 그 주인공의 머리 위로 날아가는 새를 찍은 장면이 있다고 치자. 아이맥스는 이를 온전히 보존하지만, 일반 상영관에선 날아가는 새가 잘릴 수 있다.

애석하게도 놀란이 70㎜ 아이맥스로 보여주고자 하는 걸 온전히 소화할 수 있는 극장은 전 세계에 41곳밖에 없다. 슬프게도 국내에는 단 한 곳도 없다. 70㎜ 아이맥스 전용관에서 ‘오디세이’를 보려고 해외 원정을 불사하는 관객이 생겨나고 있는 이유다. 국내에서도 CGV용산아이맥스관(이른바 ‘용아맥’) 암표가 등장했다. 70㎜ 필름 상영관은 아니나, 화면이 잘리지 않는 1.43대 1 비율을 구현하기에 관객들의 표적이 됐다.

■놀란이 재해석한 오디세이아

놀란은 오디세우스(맷 데이먼)를 영웅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실제로 트로이를 함락시킨 후 오디세우스는 기쁨이 아니라, 절망에 빠진다. 비극의 씨앗을 이 땅에 뿌렸다는 자책감과 망자들에 대한 죄책감이 그를 괴롭힌다. 이는 놀란의 전작 ‘오펜하이머’에서 주인공 오펜하이머(킬리언 머피)가 원자폭탄 발명에 성공한 뒤 느낀 고민과 맞닿아 있다. 그리고 이는,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을 떠올리게 하며 ‘속죄’의 메시지를 전한다.

■시간의 마법사 놀란, 이번엔?

놀란은 플롯의 마법사로 유명하다. 시간을 역행한 ‘메멘토’와 ‘테넷’, 시간축을 교란시켰던 ‘인셉션’, 밀러 행성에서의 1시간이 지구에서의 7년이라는 가설을 세워 눈물의 가족 상봉을 끌어낸 ‘인터스텔라’, 하나의 사건을 세 가지 시공간(해안 1주일, 바다 1일, 하늘 1시간)으로 쪼개고 분해해 전쟁 한복판으로 관객을 이송한 ‘덩케르크’ 등 시간을 변주하고 저글링해 온 ‘시간 덕후’다. ‘오디세이’ 역시 시간 구조는 단선적이지 않다. 영화는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방식으로 서술됐다. 그러나, 이전 영화와 비교하면 시간 비틀기가 덜한 편. 평소 놀란의 영화가 어렵다고 느꼈던 관객이라면, 진입장벽에 낮게 여겨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알아두면 이해를 돕는 인물들

트로이 전쟁의 배경을 숙지하고 가면 ‘오디세이’ 관람이 조금 더 용이하다. 그리스 연합군이 트로이를 공격한 표면적인 이유는 트로이 왕자인 파리스가 (아가멤논의 동생이자 스파르타의 왕인) 메넬라오스의 부인 헬레네와 사랑에 빠져 그녀와 트로이로 내빼서다. 그러나 이는 명분일 뿐, 아가멤논의 진짜 목적은 따로 있었다. 트로이를 함락시켜 지중해의 맹주가 되고자 한 것. 아가멤논에게 ‘명성’은 삶의 존재와도 같았다. 놀란이 그런 아가멤논을 어떻게 그려냈는지 살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참고로, 헬레네와 파리스, 그리고 아가멤논의 서사는 ‘일리아드’를 영화로 옮긴 브래드 피트 주연의 ‘트로이’(2004)에 더 자세히 그려져 있다. 브래드 피트가 아킬레우스로 분한 이 영화에서 오디세우스 역할은 숀 빈이 연기했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오디세이’에는 아킬레우스가 등장하지 않는다. 당초 트랜스젠더 배우 엘리엇 페이지가 아킬레우스 역을 맡는다는 루머가 돌았지만(그래서 논란이 됐지만), 엘리엇 페이지는 시논 캐릭터로 등장한다.

■놀란의 첫 내한

“놀란 감독이 익선동에서 소금빵을 먹고 있더라” “아내와 올리브영에서 쇼핑도 하더라” “맷 데이먼이 키움 히어로즈 고척돔 홈경기에 출몰했더라” “샤를리즈 테론이 이태원 프리덤을 즐기고 있더라”….

지난 주말,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강타한 ‘오디세이’ 팀 목격담이다. 아마도, ‘오디세이’는 한국 관객에게 각별하게 여겨질 가능성이 크다. 놀란의 첫 내한을 끌어낸 영화이기 때문이다. 놀란은 프로듀서이자 아내인 엠마 토마스, 주연 배우 맷 데이먼, 샤를리즈 테론과 지난 1일 한국을 찾았다.

지난 3일 서울 포시즌스 호텔에서 열린 ‘오디세이’ 기자간담회에서는 놀란이 소금빵을 먹고 올리브영에 간 이유가 밝혀졌다. 엠마 토마스에 따르면 “아들 여자친구가 한국계 미국인”이었던 것. 엠마 토마스는 “크리스가 올리브영은 힘들어했다”고 밝혀 웃음을 안기기도 했다.

이날 놀란은 극장의 가치에 대해서도 마음을 전했다. 그는 “카메라를 통해 일인칭으로 촬영된 장면을 보면서도 관객들이 이를 집단 경험으로 느낄 수 있다는 점이 바로 다른 매체는 제공할 수 없는 ‘영화’만의 독특한 경험”이라며 “‘오디세이’를 만들면서 관객들을 ‘오디세우스’의 여정에 초대한다고 생각했다. 그와 함께 배를 타고 산에 오르고 동굴에 들어가는 등 여정의 일부가 될 수 있도록 찍었다. 이러한 여정을 극장에서 다른 관객들과 함께 체험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정시우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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