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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이 칼럼] 변화의 필요성과 소득주도 성장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8-06-14 19:23:02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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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변화한다. 변화하지 않으면 발전을 이어갈 수 없고, 끝내 생존마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경제와 사회를 규율하는 국가의 제도도 마찬가지이다. 변해야 산다! 그런데 변화에도 등급이 있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문제 발생 이전의 적절한 시점에서 일어나는 ‘선제적 변화’다. 그런대로 봐줄 만한 것은 다소 늦었지만 변화의 필요성을 자각하고 서둘러 변화를 위한 개혁에 나서는 경우다. 가장 나쁜 것은 변화가 절실하고 이미 한참이나 늦었음에도 불구하고 변화의 필요성을 인지하지 못하거나 기득권 때문에 변화를 거부하는 경우이다.
우리나라는 1970년대와 80년대를 거치면서 압축적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한강의 기적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거대한 성과였다. 그런데 국가자본주의 개발독재 방식의 경제성장은 지속가능한 기간이 대체로 정해져 있다. 일정 수준의 성장과 발전을 이루고 나면 개발독재 체제 자체가 더 이상의 성장과 발전을 가로막는 족쇄가 되기 때문이다. 개발독재 덕분에 성장한 기업들도 관치경제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 규제가 완화된 더 크고 자유로운 시장을 갈망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주로 1990년대에 이런 변화의 과정을 겪었고, 그것의 부정적 여파로 1997년 외환위기를 맞았다. 김대중 정부의 노력으로 외환위기는 수습됐지만 그 대가는 상당했다. 신자유주의 체제가 자리를 잡아갔던 것이다.

노무현 정부 때 신자유주의 대신에 연대적 복지국가의 길을 과감하게 개척해 나갔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만약 이런 개혁이 집권 초부터 추진됐더라면, 확실히 ‘선제적 변화’를 위한 위대한 개혁일 것이다. 가끔 안타까운 마음에 이런 생각도 해보지만, 이런 선제적 변화는 개혁의 정치사회적 역량이 충분히 준비된 곳에서나 가능한 법이다. 당시 우리나라는 이런 조건이 갖추어져 있지 않았다. 그러므로 아무리 훌륭한 정치 지도자가 존재하더라도 이런 식의 선제적 개혁은 실현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실제로 당시 우리 사회는 “부자 되세요!”라는 유행어가 상징하듯 신자유주의적 성장 지상주의에 경도된 채 사회 공공성과 증세보다는 자유 시장과 감세에 압도적 지지를 보냈었다.

성장 지상주의를 표방했던 이명박 정부는 신자유주의 양극화 체제를 공고하게 했다. 특히 2008년 세계 경제위기로 신자유주의의 문제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방식에 안주했다. 변화를 거부했던 것이다. 재벌 대기업과 기득권 중심의 이런 불공정한 자유방임적 경제 질서는 박근혜 정부 시기에도 그대로 이어졌고, 여기에 국정 농단과 정경 유착의 적폐가 덧붙여졌다. 변화의 필요성이 절박했음에도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개혁을 거부했고, 그것의 경제사회적 결과는 참혹했다. 보통사람들의 삶은 나락으로 떨어졌고 청년들은 절망했다. 불안하고 불행한 국민이 사는 나라에서 최악의 ‘저출산 사태’가 매년 기록을 자체 경신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우리 국민은 변화의 필요성을 절감했고, 변화의 염원이 담긴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정권이 바로 문재인 정부다. 노무현 정부 후반기에 제기됐지만 보수 세력의 세금폭탄 공세에 무참히 꺾였던 복지국가의 꿈을 비록 선제적 변화의 시점은 아니지만 개혁이 절실한 시점에서 대선 공약으로 정식화하고 국정 방향으로 설정한 것은 문재인 정부의 ‘변화를 위한 절박한 선택’이다. 이것이 포용적 복지국가이며, 그 핵심 전략이 바로 ‘소득주도 성장’이다. 그러니까 소득주도 성장은 지난 20년 동안 지속된 재벌 대기업 중심의 신자유주의 양극화 체제로는 더 이상 지속가능한 성장과 발전이 불가능하다는 절박함을 담은 복지국가의 경제사회 발전 전략이다.

‘한눈에 보는 기업가정신 2017’을 보면 신자유주의 방식의 한계가 잘 드러난다. 우리나라는 노동자 250명 이상인 대기업의 고용 비중이 12.8%에 불과해 OECD 37개 국가 가운데 11.6%인 그리스 다음으로 가장 낮다. 게다가 중소기업 노동자의 임금은 대기업의 41.3%에 불과해 OECD 37개 국가 중 멕시코를 제외하면 격차가 가장 크다. 대기업은 고용 없는 성장을 하고 있고, 중소기업은 임금 수준이 형편없이 낮다. 또 자영업은 과당경쟁으로 영세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 양질의 안정적 일자리는 부족하고, 보통사람들의 실질소득은 거의 오르지 않는다. 하위계층의 실질소득은 오히려 줄어든다. 이런 상황은 외환위기 이후 지난 20년 동안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신자유주의 양극화 성장 체제를 고집하던 이명박·박근혜 정부 동안 저성장이 지속됐다. 경제와 산업이 양극화되고, 소득 불평등이 심각하고, 일자리가 불안정하고, 복지 안전망이 생산적인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는 가운데 기업가적 도전 정신과 혁신 동력이 부진해지면서 더 이상 경제가 성장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는 패러다임 전환의 방식으로 ‘소득주도 성장’을 제시했던 것이다. 이는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 축소,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노동권을 신장하고, 양질의 일자리를 확충하며, 보편적 복지 안전망의 확충과 동시에 사람에 대한 적극적 투자를 강화함으로써 보통사람들의 삶의 질을 높이려는 전략이자 혁신성장의 전제조건에 해당한다.

문재인 정부 1년이 지나자 최저임금 인상 과정에서 생긴 일부 부작용을 빌미로 소득주도 성장을 폐기·수정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은 저소득 노동자들의 소득을 높이고 내수 증대를 통해 경제의 선순환에 기여한다. 다만, 영세 자영업자와 고용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고령자 등의 어려움은 예견된 부작용이었다. 그래서 일자리 안정자금 같은 지원 대책도 함께 추진됐던 것이다. 하지만 양질의 사회서비스 일자리와 복지 안전망의 확충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부분은 아쉽다. 통계청의 올해 1분기 가계 동향 조사를 보면 소득 하위 20% 가계의 명목소득은 지난해 1분기에 비해 8%나 줄었다. 이는 주로 과거 정부가 물려준 구조적 양극화 체제와 급속한 고령화 탓이긴 하지만, 이제 소득주도 성장의 본격적인 추진이 요구됨을 잘 보여준다. 결국 정부의 패러다임 전환적 ‘확장 재정정책’이 중요하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제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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