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때는 해운대구 좌동에 남겨진 구석기 유적을 통해 약 2만 년 전부터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구석기 유적에 남겨진 정보는 석기를 제외하면 거의 남아 있지 않아 당시 삶의 모습을 상상하기는 어렵다. 다음 시기인 신석기시대에 들어오면 상황이 급변한다. 부산을 대표하는 영도구 동삼동 조개더미에서는 당시 생활상을 훨씬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많은 자료가 출토됐다. 한반도 전체의 신석기 유적에서도 손꼽히는 곳으로, 일반 교과서에도 수록돼 있다.
이 유적은 1929년 일본인 교사에 의해 그 존재가 알려진 이래 9차례 발굴이 이루어졌고, 그 과정에 부산 연구자들이 참여하여 지역에서 제1 세대 고고학자를 배출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 지역으로서는 또 다른 의미를 지닌 유적인 것이다. 국가에서는 그 중요성에 주목해 1979년 사적 266호로 지정했다.
조개더미 형성에 유리한 이유는 우선 영도 내에서도 비교적 넓은 배후 언덕이 있는 지형이고, 유적의 가운데에 희미하지만 개울과 같은 지형이 있어 마실 물을 구하기에 쉬웠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맞은편에는 아치섬(朝島, 아침섬)이 있으며, 그 사이는 비교적 얕은 바다가 있었고, 다양한 해양생물을 쉽게 구할 수 있었다. 당연히 국립해양대학교가 있는 아치섬에서도 신석기와 삼국시대 초기의 조개더미가 조사된 바 있다.
조개더미에 남겨진 생활시설로는 움집터와 야외화덕 및 옹관묘 등이 있다. 집터는 3기가 확인되었으나 유적 전체에는 더 많이 남아 있을 것으로 추정되며, 만들어진 시기는 신석기시대 전반과 중반에 해당한다. 화덕은 지름 60~70㎝의 크기로 가장자리에만 돌을 두른 모양과 돌을 무더기로 쌓은 두 가지 모양이 있는데, 돌무더기 모양 화덕은 현대의 세계 각지에서 육류나 어패류를 조리하는 사례가 남아 있어 같은 기능을 하였다고 간주되며, 그 조리법의 역사가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동삼동 주민들의 식생활은 어떠했을까? 조개더미에 남겨진 뼈로 보아 먼 바다에서는 상어 방어 다랑어를, 비교적 가까운 바다에서는 돔과 숭어 등을 낚시나 그물로 잡았다. 어류에 비해 수량이 적긴 하지만 강치 바다표범 고래 등 해양 포유류도 작살로 사냥했다. 육지동물로는 사슴과 멧돼지가 대표적이며, 곰이나 호랑이 등의 맹수류의 뼈도 출토되고, 각종 새의 뼈도 있어 사냥의 방식이 다양하였음을 보여준다. 조개류로는 잠수해서 잡는 소라 전복과 홍합 참굴 등 얕은 바다에 서식하는 종류가 매우 많은데, 대부분 현재 채취되는 것보다 크기가 매우 커, 식생활 면에서 큰 어려움이 없었다고 추정된다. 식물류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 재배종으로 조와 기장이 확인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한반도에서 원시적인 농경이 동삼동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시작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와 같은 식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도구는 대량 출토된 토기이다. 이 토기들은 주로 음식을 익히거나 식재료를 저장하는 데 사용된 것으로, 동삼동 유적이 신석기시대 전 기간에 걸쳐 주민이 살았고, 시기도 다섯 개로 나누어지는 기준이 된다. 가장 이른 시기에는 바닥이 납작하고 무늬가 없는 작은 그릇과 표면에 진흙 띠로 평행선으로 구성된 무늬를 덧붙인 덧무늬토기가 주를 이루고, 중간 단계에는 바닥이 둥글고 뾰족한 도구로 선이나 점을 새긴 이른바 빗살무늬토기가 다수다. 마지막 시기에는 표면의 무늬가 없어지고, 아가리 둘레에 진흙 띠를 덧댄 겹아가리 토기가 대표적이다.
한편 토기 파편에 사슴을 그려 사슴이 중요한 식재료임을 상징하거나, 곰의 머리를 토제품으로 만들어 중요한 신앙의 대상임을 보여주기도 한다. 또한 토기가 마르기 전에 그물로 찍어 무늬를 넣은 파편을 통해 실물이 없는 지금과 같은 정도의 그물코를 가진 그물의 존재를 입증해 주기도 한다. 이외에도 눈과 입을 표현한 조가비 가면, 조가비 팔찌, 귓불을 뚫고 끼우는 토제의 귀걸이와 연옥으로 된 고리형 귀걸이 등이 있다.
동삼동 유적은 국내 어느 유적보다 많은 자연과학적 분석을 거쳐 연구되어, 그 결과에 학계 신뢰도가 매우 높다. 출토된 동물 뼈와 숯 등 20개 정도 시료로 방사성 동위원소 연대를 측정한 결과 기원전 6000년에 가까운 신석기시대 초기부터 기원전 2000년대 신석기 말기까지의 연대가 확인되어 토기를 기준으로 한 연대와 일치함을 알 수 있다. 여기서 또 일본 열도에서 만들어진 죠몽토기와 일본 화산에서 분출된 흑요석도 다수 출토되어 이미 당시에 부산에서 보이는 대마도를 통해 열도와 교류하였음을 보여준다.
우리 가까이에 있는 동삼동 조개더미에서는 당시 주민들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무궁무진한 자료가 있으므로, 우리가 가진 유산을 어떻게 연구해서 미래 세대에 넘겨줄지 다시 한번 고민하게 된다.
부산박물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