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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석 칼럼] ‘소프트 에듀케이션’ 대안 교육은 꿈일까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11-21 19:29:21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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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살다 보면 아쉬운 일이 종종 있다.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안식년을 보내고 있을 때다. 그곳 동료 교수로부터 흥미로운 제안을 받았다. 뉴질랜드에 있는 한 농장에 2주일 정도 ‘홈스쿨링 초청 교사’로 다녀오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그림 서상균
농장주는 아이를 넷 두었는데, 큰딸은 홈스쿨링을 거쳐 옥스퍼드 대학에 입학했고 동생 세 명은 아직 홈스쿨링 단계에 있었다. 부모는 직접 아이들을 가르치기도 하지만, 다양한 교육을 위해 역시 다양한 이력의 학자나 예술가들을 단기간 초청해서 홈스쿨링 특별 코스를 맡기는 ‘커리큘럼’을 운영하고 있었다. 초청 교사에 대한 대가는 뉴질랜드 자연 농원에서의 느긋한 삶이었다. 인생에서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고 특별한 교육 혜택을 받는 일종의 국제적 상호부조 방식인 것이다.

내게 이 일을 추천한 교수는 큰딸에게서 그들의 특별한 이야기를 듣고 홈스쿨링 교사 경험을 하게 되었는데 정말 소중한 추억이었다고 했다. 나도 선뜻 수락했다. 그런데 뉴질랜드로 출발하기 전날 밤 농장주로부터 연락이 왔다. 2011년 2월 뉴질랜드 대지진이 있었기 때문이다. 2주일을 알차게 보내기 위해 온갖 상상력을 발휘해 수업 준비를 했는데 아쉬웠다. 하지만 대학교수였던 내게 대학교 이전 단계의 교육, 곧 어린이와 청소년 교육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 농장주는 큰돈 들이지 않고 자식들에게 양질의 다양한 교육 기회를 마련하려고 나름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지 않았던가. 남들 다 하는 교육 방식이 아닌 창의적 교육 프로그램을 위해 용기를 내고 깊이 생각했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 일이 있은 후, 같은 해 하반기에 미국 워싱턴대학교의 초청을 받아 2학기 동안 시애틀에 머물렀다. 옥스퍼드대에서 아쉬운 경험이 있어서, 시애틀에서는 ‘어린이를 위한 철학(Philosophy for Children)’, 약자로 ‘피퍼씨(P4C)’라고 하는 프로그램에 적극 참여했다. 그 프로그램은 두 가지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하나는 홈스쿨링을 하는 아이들이 제도권인 대학교에 와서 ‘세미나 방식’과 유사한 토론 수업을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교수들이 직접 제도권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가서 이른바 ‘소크라테스식’ 문답 수업을 하는 것이었다. 아이들의 날카로운 질문에 당혹스러운 적도 있었고, 엉뚱한 대답에서 소중한 것을 배우기도 했다. 당시 초로의 나이였던 내 자신이 성장하는 것 같았다.

지금 지난 이야기를 떠올리는 건 우리나라에서 11월이면 항상 찾아오는 수능 전후의 착잡한 사회·문화적 풍경 때문이다. 이젠 입시 전쟁이라는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닐 정도로 대입 수능은 전쟁 치르듯 한다. 학생과 학부모는 수능을 전후해서 수많은 전투 또한 치른다. 수능일이 지나자마자 대입 본고사를 앞두고 진짜 전투는 이제부터란 말도 한다. 그들에게 쉴 틈이란 없다. ‘죽느냐 붙느냐’라는 심정으로 이 모든 것에 임하기 때문이다.

벌써 20여 년 전에 나는 ‘입시 엄마가 사는 맛’이라는 역설적 의미의 칼럼을 쓴 적이 있다. 아직까지도 우리나라 학부모, 특히 ‘학모(學母)’는 여러 가지 사회 구조적 문제로 인해 자식 교육에 전적으로 매달리기 때문이다. ‘매달린다’라는 말이 가슴 아프다. 자식 교육을 위해 남들이 다 하는 일, 곧 ‘교육의 레드오션’에 뛰어들어 숨 가쁜 경쟁을 하며 자기 인생의 상당 부분을 소모하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지난 수십 년 동안 정부는 이 과열된 레드오션을 바꿔보겠다며 수많은 개혁안을 내놓았다. 수능, 학종, 내신, 수시, 정시, 자사고, 특목고 등등 이 줄임말의 개념조차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 정도인데, 이들을 기존 교육 제도 안에서 재배치하고 묶었다 풀었다 하면서 레드오션을 더욱 빨갛게 달구기만 할 뿐이었다.

반면 대안 교육은 ‘교육의 블루오션’을 찾는 일이다. 엄밀히 말해 대안 교육이 대체 교육은 아니다. 물론 홈스쿨링처럼 대체적 성격의 대안 교육도 있다. 우리가 잘 아는 몬테소리(Montessori)나 발도르프(Waldorf) 교육 시스템도 근본적(radical) 개혁이라는 점에서 ‘급진적’ 대체 교육 성격을 내재하고 있었다. 그랬기에 다양한 대안 교육이 현실 교육에서 널리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측면도 있다. 최근에는 다양한 분야에서 일고 있는 슬로 라이프 운동의 연장 선상에서 ‘슬로 에듀케이션’이 대안 교육으로 등장하고 있다.

어떤 경우든 주목할 것은 이들 혁신적 교육 운동의 공통점이다. 그것은 기존 교육제도의 ‘경직성’을 타파하는 것이다. 알베르트 슈바이처도 “끔찍한 교육의 장벽에서 해방된다면, 모든 것이 더욱 명확하고 간단하며 일관되게 보일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제도의 경직성을 타파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혁명이 쉬운 일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내가 생각하는 것은 ‘연성 교육’ 또는 ‘소프트 에듀케이션’이다. 이는 기존 교육 제도에 창의적이고 때론 도발적일 수도 있는 요소를 조금씩 침투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은 기존 교육 제도 및 그와 연관된 사회·문화·정치·경제적 이해관계의 구조가 너무 고착화돼 있기 때문이다.

연성 교육의 전략은 임계점에 도달할 정도로 단단해진 구조에 신선한 효소를 투입해가며 그것이 조금씩 말랑말랑해지도록 유도하는 것과 같다. 이를 구체화하는 방법은 지금까지 수많은 대안교육의 제안을 연구하고 선별 적용해 제도권 안에서 변화를 조금씩 일으키는 것이다. 홈스쿨링처럼 성실한 대체 교육을 하는 사람을 지원하며 그것이 제도권 교육과 연결고리를 가지는 것도 포함할 수 있다. 그러면 대안 교육이 현실성을 가질 수 있다.

이상은 개혁의 전략적 차원에서 언급한 것이고, 교육의 본질적 차원에서 내가 제안하는 소프트 에듀케이션 개념에는 좀 더 깊은 의미가 있다. 교육 자체가 융통성 있고 유연해지는 것이다. 구체적 실천은 다양할 수 있는데, 중요한 점은 고귀한 생명체로서 어린이와 청소년이 지닌 잠재력을 부드럽게 이끄는 교육의 기본을 제대로 실천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 억지 교육은 생명에 대한 모독이기 때문이다.

철학자·문화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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