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DB산업은행의 부산 이전’이라는 윤석열 대통령의 미션을 받은 강석훈 산업은행 회장과 부산 이전을 반대하는 노조 간 대립이 일주일을 넘기면서 과열되고 있다. 산은 직원들이 부산 이전을 반대하는 이유는 대외적으로는 ‘산은의 경쟁력 약화’지만 속내는 ‘서울을 떠나기 싫다’는 강력한 의지다. 일부를 제외하면 날 때부터 ‘서울내기’인 그들에게 지방 생활이란 소똥 냄새 풀풀 풍기는 시골로 가는 유배와 매한가지 일테다. 이전 대상지가 우리나라 ‘제2의 도시’라 불리는 부산이라도 그들에게는 ‘지방’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들은 왜 지방근무를 싫어할까. 단순히 생각하면 서울만큼 살기 좋은 곳이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살기 좋다는 말은 돈이 모이고, 잘 짜여진 교육 여건과 문화시설 등이 이상적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뜻이다. 서울은 명실공히 우리나라의 정치 경제 예술 문화 복지의 중심지다. 경제를 구성하는 금융 유통 기업 등을 쪼개어 보더라도 서울이 중심지임은 자명하고, 예술 분야를 회화 음악 영상 등으로 나눠보더라도 역시 중심지는 서울이다. 서울에서만 열리는 인기 공연을 보기 위해 새벽같이 서울로 올라가고, 연예인 보는 일은 ‘가뭄에 콩 나듯’하는 데도 불평없이 살아온 소위 ‘지방사람’과는 달리 각종 혜택을 누리면서도 그들은 당연한 일로 여긴다. 오히려 하나라도 뺏길까봐 노심초사다. 수십 수백 수천 가지 분야에서 중심지인데도 그 중 딱 한 가지, 금융만이라도 부산으로 옮겨달라는 지방민의 외침을 철저히 외면하고 있으니 말이다.
지방분권을 외친 지 20년이 지났지만 서울내기들이 아직도 지방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는 것을 싫어하는 것을 보면 지방분권은 여전히 뿌리를 내리지 못한 것 같다. 동남권 호남권 강원권 어디를 가나 비슷한 수준의 삶을 보장받을 수 있다면 이처럼 격렬한 반대는 하지 않을 테니까.
금융기능을 서울과 부산으로 이원화해서는 안 된다는 서울내기의 말을 듣자. 다만 그들이 생각하는 서울이 아니라 부산을 금융중심지로 육성해야 한다. 지역이 살려면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수협중앙회 등 모든 금융 기능을 부산으로 가져와야 한다. 서울 여의도와 부산 문현금융단지를 동시에 키울 게 아니라 부산 문현금융단지를 대표 금융도시로 만들어야 한다.
금융공기업 이전 효과는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부산으로 이전한 금융공기업들이 지역인재 의무할당을 시행하면서 부산대 상과대학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서울의 대학보다 심지어 서울대보다도 금융공기업에 취업하기 쉽다는 소문까지 나오고 있다. 인재와 금융기관이 몰리면서 부산시와 부산대도 이런 인프라를 활용해 한 단계 도약을 준비할 테다.
몇 년만 더 지켜보자. 금융공기업을 목표로 부산대로 몰린 인재들이 대학을 졸업한다고 서울로 갈까. 그렇지 않다. 꿈의 직장인 금융공기업이 부산에 밀집해 있으니 굳이 서울로 갈 필요가 없어진다. 자연스럽게 이 젊은이들은 부산에서 금융공기업에 취업한 뒤 세계 최고의 금융중심지 부산을 꿈꾸며 지역을 이끄는 주춧돌이 될 것이다.
이 논리를 조금 더 확장해 보자. 만약 에너지산업을 전라도에 집중한다면 어떻게 될까. 한전 한국수력원자력 등 에너지 관련 기관이 전라도에 모여든다면. 부산과 마찬가지로 에너지 분야에서 활동하고자 하는 젊은이들이 전라도로 모여들 것이다. 한국관광공사를 비롯한 관광 관련 기관을 강원도로 집중시킨다면 또 어떨까. 지역마다 그 지역을 대표하는 괜찮은 직장이 수두룩하고, 인재들도 넘쳐나는 세상이 펼쳐질 테니 지역균형발전이 자연스럽게 이뤄지지 않을까.
반대로 금융 에너지 관광 분야의 주도권을 빼앗긴 서울은 손해일까. 아니다. 1000개를 가진 이가 3개를 나눠준다고 경쟁력이 떨어질까. 오히려 인구 분산 효과로 삶의 질은 높아지고 부산 전라 강원 등 지역 거점이 골고루 성장하면서 시너지 효과를 누릴 수 있지 않을까. 지방은 단 3개만으로도 변화를 꿈꿀 수 있다. 최고의 금융기관인 산업은행도 이제는 몽니를 부리지 말고 변화의 물결을 주도하길 기대해 본다.
유정환 경제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