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한 보험영업 현장을 누비는 수의사 출신 재무설계사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수의학과를 졸업하고 동물병원을 운영하다 재테크에 대한 관심으로 낯선 영역에 뛰어든 사람이었다. 동물을 다루는 일이 싫진 않았지만 갇힌 삶에 갑갑증을 느낄 즈음 정반대의 직업이 눈에 들어왔다. ‘투잡’ 덕에 중국 베이징에 아파트를 몇 채 소유할 만큼 자산을 불렸다. 소속 회사가 자사 영업왕으로 언론사에 추천할 정도였으니 두 마리 토끼를 잡는데 성공한 셈이다.
취업포털 설문에서 세대별로 직장이 갖는 의미는 큰 차이를 보인다. 베이비붐세대(1955~63년 생)는 75%가 좋은 직장을 성공적인 인생의 조건으로 꼽았다. 하지만 386세대(1960년대 생)는 49%, X세대(1970년대 생)는 54.7%로 떨어지고,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는 46.6%에 불과하다. 2030세대 절반 이상은 직장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20대 1인 가구 10명 중 4명 이상은 복수 직업을 가진 ‘N잡러’라는 조사가 있다. 직업이 6개 이상인 청년이 10% 가깝다는 결과도 나왔다. 경제적 이유에서든, 자아실현을 위해서든 한가지 직업만으론 성에 안 찬다는 것이다.
월급 외 수입이 많아 별도의 건강보험료를 내는 직장인이 2022년 말 기준으로 55만 명을 넘었다. 직장 월급 말고 이자소득 배당소득 임대소득 등이 연 2000만 원을 초과하는 경우다. 2019년 18만 명, 2020년 21만 명, 2021년 24만 명으로 해마다 조금씩 증가하다 지난해에는 두 배 이상 늘어났다. 건보료 부과 기준이 대폭 강화되긴 했지만, 가욋돈을 버는 사람이 실제로 많아졌다. 코로나19 사태가 야기한 경제적 불안, 비대면 문화 확산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평생 직장은 없다. 최고가 되어 떠나라’. 배달의민족이 본사 사무실에 붙여놓은 글귀다. 과거에는 ‘투잡’이나 ‘스리잡’이라는 말이 부정적인 어감을 갖고 있었다. 생계가 해결되지 않아 여러 일을 한다는 의미로 통용됐기 때문이다. 지금은 다르다. 온라인과 모바일 생태계가 ‘N잡러’ 출현을 부추긴다. 스마트폰 앱만 켜면 객장에 굳이 나가지 않아도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가 가능하다. 내공만 있으면 유튜브 채널을 개설해 지식을 나누고 돈도 챙긴다. 유튜버를 겸직하는 의사 교사 공무원이 날로 늘어나는 이유다. 책을 쓰거나 모바일 이모티콘을 제작해 저작권 수입을 올리는 이도 적지 않다. 어느새 ‘한우물만 판다’는 다짐이 낯선 시대가 됐다.
강필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