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말 유학자 우탁은 시조 ‘탄로가’에서 늙음에 대해 ‘한 손에 막대 잡고/ 또 한손에 가시 쥐고/ 늙는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렸더니/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고 말했다. 영화 ‘은교’에서는 “너의 젊음이 너의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나의 늙음도 나의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는 표현이 나온다. 종합하면 인생의 덧없고 빠른 삶을 누구나 한탄할지언정 늙음이 나의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니 비난하지는 말라는 뜻이다.
우리는 모두 노인이 된다. 예부터 노인은 늙은 사람이 아니라 오래된 지혜를 가진 현명한 생각의 소유자를 뜻했다. 이런 노인을 위해 그동안 많은 정책이 만들어졌다. 다만 노인을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정권이 노인복지에 많은 공을 들인 것은 기본적으로 표 때문이다. 인구비중이 커지고 투표율이 다른 세대보다 월등히 높아 선심성 정책이 불가피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노인은 없고 표만 있을 때 생긴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내년에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1000만 명을 넘어설 전망이다. 한국 사람 5명 중 1명은 노인이라는 얘기다. 특히 부산은 지난해 말 기준 65세 이상 고령자 비율이 22.6%로 전국 특별·광역시 중 가장 높다. 하지만 우리나라 특히 부산의 노인 지원책은 빈약하기만 하다. 새벽에 아파트 산책로 등을 살펴보라. 춥고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새벽부터 아파트 단지에서 운동하는 어르신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헬스장 등 시설 이용에 대한 비용 부담 또는 노인에 대한 불편한 시선 때문이다.
집 주변 학교에서 운동을 하려고 해도 노인들에게는 기회가 많지 않다. 배드민턴과 탁구 등 조직화된 동호인에 밀려 실내체육관 이용은 쉽지 않고 야외 운동장에서 걷는 게 고작이다. 스포츠클럽은 엘리트체육 육성 목적으로 운영돼 그림의 떡에 불과하고, 국민체육센터가 사실상 유일한 대안이지만 예산에 발목이 잡히면서 노인 스포츠 활성화를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기가 힘든 상황이다. 물론 돈에 여유가 있는 이들은 파크골프를 비롯한 다양한 스포츠 동호회에 가입하거나 사설 헬스장 등을 이용하겠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이 더 많은 것은 ‘불편한 진실’이다.
고령자 비율이 높은 일본은 물론 복지 선진국인 유럽 국가들은 이미 ‘운동을 통한 노인들의 건강한 삶’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일본에서는 스포츠용품 업체인 미즈노가 주도하고 지자체와 체육협회 대학 등이 수년간 연구한 뇌 건강훈련 프로그램인 ‘라라라 서킷’과 ‘라라라 서킷 라이트’가 14개 현·부의 26개 체육관에서 실시되고 있다. 영국에서는 사회적 기업인 ‘굿 부스트’가 치료 운동 및 웰빙 프로그램을 제작해 지역사회에 제공하고 있다. 독일에서는 건강을 유지하고 싶어하는 노인을 위해 집과 가까운 시설에서 운동할 수 있는 프로그램인 ‘마흐 미트 블라이 피트(가입하고 건강을 유지하세요)’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스페인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이후 스포츠 정책을 대폭 수정해 특정 연령대를 위한 스포츠가 아닌 전 연령대가 함께 누릴 수 있는 스포츠 정책을 구축하고 있다. 영국 옥스포드 대학 교수 베버리지가 주창한 ‘요람에서 무덤까지’를 스포츠정책에 도입한 것이다. 전 연령대가 참가할 수 있는 스포츠 행사 정보와 스포츠시설 검색이 사이트 한 곳에서 모두 이뤄지고, 학령기·장애인·노인을 위한 할인요금 체계도 잘 짜여져 있다. 시설 이용료의 40%를 지원하는 ‘실업자 요금’까지 있다. 지난 9월 ‘부산 복지스포츠 도시로’ 기획기사를 위해 만난 스페인 바르셀로나시의 수사나 스포츠 총괄 매니저는 “특정 세대를 위한 스포츠 정책이 아니라 전 연령대가 함께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마련하는데 신경을 쓰고 있다”며 “노인과 실업자 등 자칫 집에만 웅크리고 있을 수 있는 이들을 밖으로 유도해 사람들과 어울리도록 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No Country for Old Men)’는 제목의 영화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아일랜드 시인 예이츠의 시에서 따온 동명 소설을 각색해 아카데미상 8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될 만큼 인기를 얻었다. 스릴러물인 이 영화에 주연급 보안관으로 나온 ‘벨 ’ 외에 노인은 없지만 삶과 죽음, 젊음과 늙음에 대한 얘기가 녹아져 있다 보니 노인 정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때 자주 인용된다.
그동안 노인을 위한 ‘복지 스포츠’에 소홀했던 부산시가 ‘15분 도시’ 정책의 일환으로 노인들의 관심이 급상승하고 있는 파크골프장을 500홀까지 신설하고, 스포츠클럽을 확충하기로 해 반가운 마음이다. 다만 ‘기획은 좋은데 실행은 약하다’는 평가를 받는 박형준 부산시장이 엑스포 유치, 구덕운동장 개발 등 그림만 그리고 실행을 소홀히 한 우를 되풀이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유럽과 일본의 사례를 참고해 부산에서는 제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표현이 나오지 않길 바란다.
유정환 편집국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