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가상화폐 테라·루나 폭락사태’를 일으켜 투자자들에게 50조 원 이상의 피해를 안긴 권도형이 몬테네그로에서 미국으로 송환된 후 지난 2일(현지시간)부터 재판을 받고 있다. 중형이 예상되는 미국행을 피하려고 제기한 헌법소원이 기각되자 이제는 무죄를 주장하며 자기 방어에 나서고 있다고 한다. 20만 명에 달하는 전 세계 투자자에게 피눈물을 흘리게 한 것도 모자라 죗값도 치르지 않겠다는 심보다.
권도형은 테라·루나를 발행했던 테라폼랩스 공동 창업자로 테라의 블록체인 기술을 과장해 투자자들에게 테라와 연동된 루나를 사도록 유도했다. 이후 루나는 2022년 4월 500억 달러(약 73조6000억 원)까지 치솟았지만 한 달만에 두 가상화폐 모두 휴지조각 수준으로 폭락하면서 투자자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 권도형은 이 무렵 싱가포르로 출국한 뒤 잠적했다. 아랍에미리트(UAE)와 세르비아를 거쳐 몬테네그로에 입국한 후 2023년 3월 현지 공항에서 두바이행 전세기에 탑승하려다 위조 여권이 발각돼 11개월간의 도피 행각에 마침표를 찍었다. 위조 여권 사용 혐의로 징역 4개월을 선고받은 그는 지난해 3월 형기를 마치고 출소한 뒤 외국인수용소로 이송됐다가 지난달 31일 미국으로 인도됐다.
권도형은 테라의 블록체인 기술을 속이고 허위 정보를 퍼뜨려 코인을 판매한 혐의, 테라 가치가 급락하자 가격 부양으로 시세를 조종했다는 혐의, 자금세탁 공모 혐의까지 총 9개 혐의를 받고 있다. 미국은 개별 범죄마다 부과된 형량을 합산하는 ‘병과주의’를 채택하고 있으므로 혐의가 모두 인정되면 총 형량은 130년이 된다. 반면 한국으로 이송됐더라면 최대 징역 40년에 그칠 수 있었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이 적용되면 무기 또는 5년 이상 징역에 처하지만 무기징역이 사실상 규정만 남은 상태로 그동안 최고 형량이 40년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권도형은 형량이 상대적으로 약한 한국으로의 송환을 끈질기게 요구했지만 헌법소원에서 패했다.
권도형은 지난 2일 열린 재판에서 무죄를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미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제기한 민사소송에서 패소해 44억7000만 달러(약 6조5000억 원) 규모의 환수금 및 벌금을 납부해야 한다. 그런 만큼 그의 무죄 주장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다만 블룸버그통신은 최근 권도형의 회사가 파산을 신청했다고 전했다. 벌금을 내지 않기 위해서일까. 이마저도 사전에 계획했다면 ‘희대의 인물’로 손꼽을 만하다.
유정환 편집국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