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만난 부산의 한 중소기업 A 대표는 회사를 양산으로 옮길 것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공장 부지 확장을 위해 양산시청을 찾았다. 담당 공무원은 친절하게 맞아주며 “양산에 공장부지가 몇 곳 있으니 찾아오면 안내해 드리겠다”고 응대했다고 한다. A대표는 부산에서도 공장 부지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부산시청을 방문했지만 실망감만 느꼈다. 담당 공무원이 “부산에는 그럴 만한 땅이 없다”며 다소 쌀쌀 맞게 돌려보냈기 때문이다. A 대표는 “회의가 들었다. 지금 가동하고 있는 양산 공장을 본사로 등록하거나 추가로 양산에 땅을 매입해 본사로 등록할까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그가 부산을 떠나고자 하는 마음을 부채질한 일도 있었다. 도심에 위치한 본사에 자재 창고가 있어 수시로 물건을 싣고내리는데 갑자기 주변에 CCTV가 설치됐다. 그러더니 위반 딱지가 날아들기 시작했다. 구청에 사정을 이야기해도 “안걸리게 하라”는 말뿐이다. A 대표는 “교통 흐름에 방해가 되는 것도 아닌데 자재를 싣지 못하면 어떻게 회사를 운영하느냐. 시가 지역기업엔 관심을 두지 않는다”며 아쉬워했다.
‘기업친화도시’를 표방하는 부산이 아파트 짓는 데만 혈안이라는 말도 심심찮게 들린다. 기업 유치가 어려운 상황에서 도심 내 유휴부지에 아파트 건설이 진행되는 현상이 맞물린 결과다. 한동안 ‘노인과 바다’로 불리던 부산이 이제는 ‘노인과 아파트’ 또는 ‘노인과 바다 그리고 아파트’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까지 얻었다. 시민은 ‘이대로 괜찮을까’하는 걱정이 앞선다.
전국적으로 아파트 붐이 일면서 부산도 예외는 아니다. 대형마트뿐만 아니라 기업이 빠져나간 자리에는 아파트가 속속 들어섰거나 들어설 예정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급등한 지가에 생산시설을 외곽으로 옮기고 아파트 부지를 매각하는 것이 훨씬 이익이 크기 때문이다. 남천동 메가마트 부지를 소유한 부산도시가스는 이 부지를 매각했고, 여기에는 평균 분양가 5000만 원을 웃도는 하이엔드급 아파트가 들어설 계획이다. 이 밖에도 ▷서면 NC 백화점 ▷홈플러스 가야·연산·해운대점 ▷롯데마트 금정점 ▷해운대구 재송동 옛 한진 컨테이너 야적장(CY) ▷사상구 한일시멘트 부산공장 등도 비슷한 상황이다. 접근성이 좋은 도심 내 ‘금싸라기 땅’에 번듯한 기업이 이전하면 좋겠지만 비현실적인 지가를 고려하면 아쉬움만 남는다.
굴러온 돌(아파트)이 박힌 돌(기업)을 빼내는 일도 적지 않다. 남구 대연동의 밀가루 제조업체 ‘한탑(옛 영남제분)’은 시의 도시재정비 계획으로 회사를 옮겨야 할 상황에 놓였다. 회사는 용도 변경에 따라 땅값이 크게 올라 종합건설업체에 부지를 매각할 가능성이 높다. 시는 밀가루 제조로 인한 먼지 등으로 민원이 많이 제기돼 재정비 계획을 세웠다지만 결과적으로는 기업을 아파트가 대체하는 결과를 낳게 됐다. 사하구의 YK 스틸 역시 공장 설립 이후 들어선 아파트 민원에 밀려나는 기업의 대표적인 사례다. YK스틸이 2027년 충남 당진으로 떠나고 나면 이 곳에도 아파트가 들어설 것으로 보인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부산의 미래를 견인할 것으로 기대됐던 기업도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시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던 기업들은 투자 계획을 지키지 못해 정부 지원금을 반납하거나 불성실 공시 등으로 상폐 위기에 놓였다. 2021년 전기차 부품 클러스터 구축을 목표로 한 ‘코렌스EM 부산형 일자리 모델’이 정부의 상생형지역일자리로 선정돼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게 됐다. 하지만 약속한 투자계획을 지키지 못해 정부로부터 받은 지역투자 촉진 보조금 중 70억 원이 넘는 금액을 반환해야 할 처지로 알려졌다. 한때 시가총액 9조 원을 웃돌며 2023년 6월 코스피200 지수에 편입됐던 ‘금양’은 상장폐지 위기에 놓였다. 두 곳 모두 시가 ‘장밋빛 기대’를 갖고 전폭적으로 지원한 곳이어서 일자리 및 산업 활성화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최근 부산을 떠나는 기업과 청년 인구가 늘어난 엄정한 현실 앞에서 아파트 열풍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부산 인구는 2016년 354만6887명에서 2020년 343만8710명, 2024년 332만9888명으로 4년마다 약 11만 명씩 줄고있다. 부산 생산가능인구(15~64세) 전망도 ▷2015년 255만 명 ▷2020년 239만 명에서 ▷2025년 219만 명 ▷2030년 202만 명 ▷2035년 186만 명으로 급격히 줄 것으로 전망된다.
기업과 대형마트가 사라진 자리에 대체 사업장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아파트만 들어서면 외곽지역을 중심으로 도시 공동화가 급속하게 진행될 것이라는 걱정이 많다. 시민이 시에 주문하는 것은 미래 지향적인 산업 생태계를 조성해 ‘청년이 돌아오는 부산’을 만드는 것이다.
유정환 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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