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의 설법을 크게 둘로 나누면 경장과 율장이다. 경장은 불교의 교리이고, 율장은 불교에서 승려나 신도의 생활 규범을 적어 놓은 책이다. 4세기 극동아시아 여러 나라에서는 인도로부터 불교 경전의 전래 상황이 경장에 비해 율장이 많이 부족했다. 따라서 승려들이 어떤 계율에 따라 살아가야 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았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중국 서안에 살던 법현(法顯, AD 337~422)은 율장을 구하기 위해 인도 여행단을 조직하고, AD 399년 3월 혜경 도정 혜응 혜외 등 동료 승려와 함께 인도를 향해 길을 떠났다.

당시 법현은 64세의 고령이었으며, 동반자들의 나이는 이보다 젊은 40, 50대였다. AD 400년 10월께 투루판(고창) 부근의 오이국(Karashahr)에 도착했는데, 이곳에서 혜외는 다음 여행에 필요한 물자를 구하러 투루판으로 간 후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서 다섯 명의 여행단이 네 명으로 줄어들었다. AD 402년 북인도의 간다라 지역 불루사국(Peshawar)에 도착했으나 혜응이 병에 걸려 도정의 극진한 간호에도 불구하고 이곳에서 병사했다.

다음 여정인 나갈국(Jalolabad)에서 세 명은 겨울 3개월 동안 머문 후 남쪽으로 향해 소설산(Sefid-kuh)에 도착했는데, 이곳은 사계절 내내 눈이 쌓여 있는 고산지대였다. 여기서 일행 중 혜경이 고산병에 걸려 일어나지 못하고, 입에서 하얀 거품을 뿜어내며 법현에게 “저 역시 다시 살아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법사께서는 빨리 길을 재촉하여 가십시오. 우물쭈물하다가 함께 죽으면 어떻게 합니까?”라고 말한 후 숨을 거두었다. 이상의 내용에서 그 옛날 인도로 가는 비단길은 이름은 예쁘지만, 고행이 뒤따라야 하는 여정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길을 떠나온 지 6년 후, 법현과 도정 두 사람은 인도의 동부 갠지스 강 하류 지역인 마가다국의 수도 파련불읍(Patna)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여행 목적이었던 여러 가지 율장을 비로소 구할 수 있었다. 대표적인 ‘마하승기율’은 부처님이 살아있을 때 대중들에게 설법한 승려와 신도들의 생활 규범 하나하나가 석가세존의 음성과 같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대표적 율장인데 이 책을 드디어 손에 쥘 수 있었다. 법현이 이곳에서 3년간 머문 것은 당시의 범어, 즉 인도 언어를 학습해 ‘마하승기율’을 독해하기 위함이었다.

드디어 중국으로 귀국을 준비하던 어느 날, 마지막까지 목숨을 유지하며 함께 남아 있던 도정이 법현에게 찾아와 말했다. “이제부터 불타의 도를 얻을 때까지 저는 인도에서 불도를 닦으며 그냥 살겠습니다”고 했다. 그러나 법현은 본래의 마음을 굽히지 않고, 수만 리를 헤매며 어렵게 구한 율장들을 중국에 전하기 위해 홀로 첨파국(Campa)을 거쳐 동인도의 항구 도시 다마리제국(Tamralipti)에 안착했다. 여기서 408~409년까지 약 2년간 머물다 10월에 사자국(Ceylon), 지금의 스리랑카로 떠났다. 법현은 왜 해로를 선택해 귀국할 계획을 세웠을까?

율장인 ‘마하승기율’ 제3권에는 승려가 품위를 유지하기 위해 항상 몸에 지니며 사용하는 물건들이 나열돼 있다. 법현이 ‘마하승기율’을 발견한 이후로부터 ‘군지와 조관’이라는 두 개의 물병은 승려가 항상 몸에 지녀야하는 계율로 명시돼 있었는데, 인도 동북부에서는 이 물병들을 구할 수 없었다. 따라서 초기 불교 시대의 전통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사자국, 즉 현재의 스리랑카에 이 물병을 구하기 위해 들른 것이다.

이 ‘군지와 조관’이라는 물병은 필자의 박사 논문 주제였기 때문에, 나 역시 인도 전역을 10년간 여름방학이면 이 물병을 찾아 헤매고 다녔으나 결국 인도에서는 ‘군지와 조관’을 찾는데 실패했다. 이후 2013년 여름, 율장에 기록된 군지라는 물병의 형상을 찾아 나는 최후로 법현의 행로를 따라 스리랑카 지역을 방문했다. 이 섬의 북쪽에 위치한 아뉴라다프라 시의 자타바나(Jatavana)프로젝트 박물관에서, 그 옛날 2~4세기 이 지역에서 승려들이 사용하던 ‘군지와 조관’이라 부르는 물병을 발견한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법현이 인도 동북부 파트나 지역에서 ‘마하승기율’을 발견했으나, 이 율장에 기록된 물병의 모양을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스리랑카 지역을 방문한 것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면서 법현의 선견지명에 감탄했다.

법현이 중국 서안을 출발한지 12년 만에 이곳 아뉴라다프라에서 ‘군지와 조관’ 한 쌍을 구해 AD 411년, 76세가 된 노승은 이곳에서 중국으로 가는 배를 탔다. 출범 첫날부터 편서풍을 만나 동쪽으로 순행했지만, 3일 후 한밤에 태풍을 만나 배에 물이 차기 시작했다. 여행객 모두가 목숨을 구하기 위해 의논하고, 중량이 있는 물건들을 바다에 던져 버릴 때, 법현은 어렵게 구한 물병 ‘군지와 조관’ 한 쌍을 바다에 던져버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