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싹 속았수다’라는 인기드라마가 종영됐지만, 여운은 여전히 강하게 남아있다. 이후 여행객의 발걸음은 감동을 직접 느끼기 위해 드라마의 배경인 제주도로 다시 향하고 있고, 항공 노선도 속속 증편됐다고 한다. 침체된 국내 관광업계에 단비 같은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유명 인사들도 앞다퉈 ‘수고하셨습니다’는 뜻의 제주 방언 ‘폭싹 속았수다’를 언급하며, 감명 깊게 봤다는 사연을 전했다. 젊은 층의 전유물이라고 여겨졌던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의 장벽을 허물며 중·노년층까지 사로잡았다는 호평도 이어졌다.

1950년대부터 현재까지, 대한민국 제주도의 한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평범한 3대 가족의 삶을 그린 이 드라마에 전 세계도 열광했다. 공개 한 달도 안 돼 넷플릭스 비영어권 시리즈 부문 시청률 1위로 올랐다. 각국 시청자들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인생 드라마” “눈물 없이 볼 수 없었다”는 반응을 쏟아냈다. ‘가족’이라는 보편적 정서가 국경을 넘어선 것이다.

드라마에서 또 다른 주연은 바로 ‘바다’였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바다로 향했던 주인공들의 삶은 우리에게 묵직한 울림을 줬다. 자식 뒷바라지에 고된 물질을 하다가 꽃다운 나이에 요절한 해녀(애순의 엄마),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무쇠 같은 성실함으로 새벽마다 배를 띄우다가 생을 마감한 어부(관식). 이들은 단지 드라마 속 인물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수많은 어업인의 현실이다.

바다를 터전으로 사는 어업인의 인생은 이처럼 굴곡지다. 하루도 같은 날이 없는 바다와도 같다. 잔잔한 날도 있지만, 거친 풍랑과 파도는 언제든 닥칠 수 있다. 이들은 이러한 위험을 숙명처럼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바다에서 무사고를 기원하는 옛 의식 ‘풍어제’가 여전히 전국 어촌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는 이유다. 바닷일이 이처럼 어렵고 힘든 일이라는 것은 드라마에서도 그대로 그려졌다. 애순의 아들이 먼 바다로 나가는 배를 탔다는 소식에 애순과 관식이 있는 힘을 다해 출항했던 배를 돌려세우는 장면은 그 두려움과 절절한 부모 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우리 국민이 사시사철 수산물을 즐기는 데에는 이런 어업인의 희생이 있어서다. 수많은 어업인이 쏟은 땀과 노력의 산물이 국민의 건강한 일상을 살게 해주는 원동력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노고는 특히, 한국경제의 비약적 성장을 가져다준 발판이 됐다. 애순이가 성장할 무렵인 1964년은 우리나라가 사상 최초 수출 실적 1억 달러 달성이라는 대업을 이룬 해였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당시 수산물은 12%의 비중을 차지한 우리나라 1위 수출 품목이었다. 그때 벌어들인 외화는 우리 경제성장의 큰 주춧돌이 됐다. 전 세계적으로 유례 없는 ‘한강의 기적’이라는 급속한 성장을 만들어내는 데 크게 기여했으며, 그 일등공신이 바로 국민의 먹거리인 수산물과 이를 생산하는 어업인이었다. 오늘날 반도체가 그 자리를 이어받았지만, 그 뿌리는 바다였다.

지금은 어업인들이 쌓아 올린 금자탑 빛이 바래지고 있다. 수출 신화에 앞장섰던 수산물을 잡겠다는 사람을 찾기가 점점 힘들어진다. 빈자리는 외국인으로 메워지고 있다. 극한의 노동으로 수산물을 애써 생산해도 벌이는 도시에 비해 턱없이 낮다. 이로 인해 어촌 이탈도 극심해지고 있다. 잡을 수 있는 어획량이 급격히 줄고 있는 것도 큰 문제다. 해마다 뒤바뀌는 바다 수온 변화로 수산 자원이 급감했다. 잡을 게 없으니 어민의 생계에도 심각한 타격이 될 수밖에 없다. 전국 어업인이 개선되길 염원하는 공통점이다.

수협중앙회는 어려운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어촌 현장에서 절박한 요구와 목소리를 듣고 시급한 해결 과제를 발굴했다. 여기에는 어업인이 겪는 제도적 문제점을 개선하고, 지금보다 수산업이 한 단계 성장하는 데 요구되는 국가적 지원의 필요성이 담겼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금이 기회다. 애순이 엄마와 관식처럼 바다에 인생을 건 90만 수산업 종사자의 헌신이 정당한 보답으로 이어지도록 최우선 국정과제로 다뤄지길 기대한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폭싹 속은’ 이들을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