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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천구의 도덕경…민주주의의 길 <220> 天地弗敢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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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8-09-20 19:44:40
  •  |   본지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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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천(大-1)땅 지(土-3)아닐 불(弓-2)감히 감(攵-8)신하로 삼을 신(臣-0)

작위로 이루어진 문명은 사람의 의식까지 끊임없이 조작한다. 심지어 자연을 끌어와서까지 의식의 조작을 감행한다. ‘주역’에 그런 면이 숨어 있다. 핵심인 팔괘의 하늘과 땅, 우레와 바람, 물과 불, 산과 못은 모두 우리가 감각으로 경험할 수 있는 대상들이다. 그런데 이들 어디에 높고 낮음, 귀함과 천함의 표식이 있는가?

‘주역’ ‘계사전 상’에서는 “天尊地卑, 乾坤定矣. 卑高以陳, 貴賤位矣”(천존지비, 건곤정의. 비고이진, 귀천위의) 곧 “하늘은 존귀하고 땅은 낮으니, 이것으로 건과 곤이 정해진다. 낮은 것과 높은 것이 펼쳐지니, 귀한 것과 천한 것이 자리 잡는다”고 했다. 여기서 하늘과 땅을 규정한 尊卑(존비)는 물리적인 높고 낮음을 뜻하는 高下(고하)와 달리 지극히 인간적인 가치 판단을 담고 있다. 흥미롭게도 존비는 모두 술통을 두 손으로 받든 꼴의 글자인데, 尊(존)은 제사에 쓰이는 술잔 또는 술통이고 卑(비)는 일반적인 술통을 가리킨다.

하늘이 위에 있어 높고 땅은 아래에 있어 낮은가? 그 높음과 낮음이 사람이나 직업의 높음과 낮음으로 등치될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만물을 낳는 땅이 낮으므로 농사짓는 농부와 물건 만드는 공인도 낮은 계층이 된 것인가? 하늘은 하는 일이 없으면서 높이 있으므로 인간사에서도 하는 일이 없는 자가 높은 자리를 차지한다고 본 것인가?

갖가지 제도와 윤리는 근본적으로 구분하고 구별 짓는 장치다. 이를 문명화라고 그럴듯하게 포장해 왔으나, 실제로는 개인과 개인, 가문과 가문, 집단들 사이에 차별과 불평등, 대립과 갈등을 심화시켰을 뿐이다. ‘주역’은 그런 문제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일종의 지침서를 자처했으나, 도리어 차별과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구실도 했다.

‘주역’은 乾坤(건곤)으로 시작한다. 이는 물리적인 하늘과 땅이 아니라 인간의 의식이 빚어낸 하늘과 땅이다.

진정한 易(역)의 세계, 사물들과 현상들이 끊임없이 生生(생생)하는 세계를 보려면, 노자가 말한 “天地弗敢臣”(천지불감신) 곧 “하늘과 땅도 감히 신하로 삼지 못하는” 道(도)를 먼저 파악해야 한다.

고전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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