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있을 유(月-2)모양 상(犬-4)뒤섞일 혼(水-8)이루어질 성(戈-3)

다음은 ‘죽간본’ 11-1이다. “有狀混成, 先天地生. 寂寥, 獨立不改, 可以爲天下母. 未知其名, 字之曰道, 吾强爲之名曰大. 大曰逝, 逝曰遠, 遠曰返.”(유상혼성, 선천지생. 적료, 독립불개, 가이위천하모. 미지기명, 자지왈도, 오강위지명왈대. 대왈서, 서왈원, 원왈반) “뒤섞여 이루어진 모습이 있으니, 천지보다 먼저 생겨났네. 그득하고 휑한데 홀로 서서 바뀌지도 않아, 천하의 어미라 할 수 있다네. 아직도 그 이름을 몰라 글자로 ‘도’라 하고는 억지로 이름을 붙여서 ‘크다’고 하지. 크므로 아득히 간다 하고, 아득히 가므로 멀다 하며, 멀므로 돌아온다 하지.”

狀(상)은 모양이나 상태를 뜻한다. 混(혼)은 섞이다, 흐리다는 뜻이다. 寂(적)은 아무런 소리가 없어 고요하다는 뜻이다. 寥(료)는 텅 비어서 휑하다는 뜻이다. 强(강)은 억지로, 억지로 시키다는 뜻이다. 逝(서)는 아주 가다, 뜨다는 뜻이다.

앞서 10-2(<225>)에서는 “始制有名”(시제유명) 곧 “처음 마름질하니 이름이 있게 되었다”고 했다. 마름질은 말 그대로 인위적인 조작을 이른다. 인간이 사회와 국가를 이루면서 고안한 갖가지 관습이나 규범, 제도 따위가 모두 마름질의 결과다. 마름질은 인간이 생존해 가기에 알맞은 체계와 질서를 구축하려는 노력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마름질의 결과는 분명 自然(자연)과 달라 보이지만, 그 과정은 결코 자연에 어긋나는 것이라 할 수는 없다. 큰 틀에서는 인간의 문명도 자연의 법칙 안에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노자가 도나 자연을 내세운 것은 그러한 실상, 문명의 토대를 우리가 간과하고 있음을 지적하기 위해서다. 위의 문장 첫머리를 보라. “有狀混成, 先天地生”(유상혼성, 선천지생) 즉 “뒤섞여 이루어진 모습이 있으니, 천지보다 먼저 생겨났네.”

오랜 세월에 걸쳐 인위적으로 체계나 질서를 구축했으면서도 인간은 하늘과 땅을 숭배해 왔다. 우리의 감각에서 가장 너르고 크며 오묘하고 신비한 대상이기 때문이리라. 거의 모든 신화와 종교가 이 천지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데서도 확인된다. 노자는 그 천지보다 앞선 상태로서 混(혼)을 말한다. 장자는 이를 混沌(혼돈)으로 표현했다.

고전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