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 치(至-4)빌 허(虍-6)지킬 수(宀-3)고요할 정(靑-8)

다음은 ‘죽간본’ 13-1이다. “至虛, 恒也; 守中, 篤也.”(지허, 항야; 수중, 독야) “텅 빔에 이르면 한결같고, 가운데를 지키면 도탑다.”

이 문장에 대해서는 대체로 세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텅 빔의 한결같음에 이르고, 마음의 도타움을 지킨다”로 해석하는 방법과 “텅 빔에 이르기를 한결같이 하고, 가운데를 지키기를 도탑게 한다”로 해석하는 방법, 그리고 “텅 빔에 이르면 한결같고, 가운데를 지키면 도탑다”로 해석하는 방법이 그것이다. 여기서는 세 번째 해석을 따랐다.

사실 두 번째 해석과 세 번째 해석은 의미상 서로 겹친다. 말하자면 이렇다. 텅 빔에 이르지 못했다면 한결같이 애써서 텅 빔에 이르려 해야 하지만, 텅 빔에 이르게 되면 저절로 한결같아진다. 마찬가지로 가운데를 지키려면 도탑게 해야 하는데, 이미 가운데를 지키는 경지에 이르면 언제나 도탑다.

그런데 통행본에는 “致虛 極; 守靜, 篤”(치허, 극; 수정, 독)으로 되어 있다. 풀이하자면, “텅 빈 데 이르면 지극하고, 고요함을 지키면 도탑다”는 뜻이다. ‘죽간본’과 가장 큰 차이가 나는 것은 靜(정)이다.

물론 中(중)이 마음을 가리키고 靜(정)을 마음의 고요함으로 본다면, 다르지 않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앞의 虛(허)를 생각하면, 역시 속이 비어 있는 中(중)이 본래 뜻에 맞다. 실제로 통행본 5장에 나오는 “多言數窮, 不如守中”(다언삭궁, 불여수중) 곧 “말이 많으면 자주 막히나니, 텅 빔을 지키는 것이 낫다”는 구절을 보더라도 중이 허와 짝을 이룬다.

그런데 왜 통행본에서는 靜(정)이라 했는가? 이는 역사적으로 장자학파와 관련이 있다.

‘莊子(장자)’에서 靜(정)은 자주 나오며 중요하게 쓰이고 있다. 가령 ‘장자’ ‘天道(천도)’를 보면, “虛則靜, 靜則動, 動則得矣”(허즉정, 정즉동, 동즉득의) 곧 “비우면 고요해지고, 고요하면 잘 움직이고, 잘 움직이면 뜻대로 된다”는 구절이 나온다.

그런데 이 虛靜(허정)을 노자나 장자뿐만 아니라 순자도 중시했다.

고전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