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을 소(小-0) 확실할 확(石-10) 행복 행(干-5)

한 해가 저물어간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곳곳에서 ‘올해의 사자성어’를 들먹이는데, 나로서는 올 한 해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린 ‘小確幸(소확행)’을 꼽고 싶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그의 수필집에서 쓴 말인데, 한국에 그의 작품을 좋아하는 독자가 많은 탓인지 이 용어가 널리 쓰이고 있다. 작지만 확실한 행복! 일상에서 소박하게 행복을 누리자는 뜻이겠지만, 땜질 수준의 행복이라도 누려야겠다는 서글픈 심사가 담겨 있는 듯해서 꽤 씁쓸하고 안타깝다.

작은 행복은 무엇이고, 확실한 행복은 또 무엇인가? 행복은 오롯이 느끼는 만족과 기쁨, 즐거움일진대, 거기에 무슨 크고 작은 것이 있단 말인가. 불확실한 행복도 있는가? 나로서는 금시초문이다. 3할이나 4할 정도 확실하면 덜 행복하고, 7할이나 8할쯤 되면 꽤 행복한가? 우리 경험으로 보자면, 행복을 느끼는 순간은, 적어도 그 순간은 10할 곧 100% 확실할 때다. 행복은 斷續的(단속적)이냐 持續的(지속적)이냐, 즉 끊어졌다 이어졌다 하느냐 아니면 오래 이어지느냐가 관건이다.

어설픈 행복, 소확행은 결과와 성과만 중시하며 경쟁을 부추기는 풍조 속에서 간신히 찾아낸 한국인들의 피난처 아닐까? 그리고 남에게 어떻게 보여질까 늘 남을 의식하며 사는 사람들의 심리가 투영된 것 아닐까? 이는 결국, 삶이 旅程(여정)이듯이 무슨 일이든 과정이 가장 중요하며 거기에 참된 행복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거나 잊고 있다는 뜻이다.

‘문자’ ‘上德(상덕)’에 나온다. “矢之疾, 不過二里; 跬步不休, 跛鱉千里; 累塊不止, 丘山從成”(시지질, 불과이리; 규보불휴, 파별천리; 누괴불지, 구산종성) “화살은 아무리 빨라도 2리를 넘게 날아가지 않고, 반걸음씩 가든 절름발이든 쉬지 않으면 천 리에 이르며, 멈추지 않고 흙을 쌓으면 산도 이루어진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쉬지 않고 꾸준히 나아가야 한다는 것은 그래야만 한다는 도덕률이 아니라 거기에 참된 행복, 과정의 행복이 있다는 말이다. 이 행복을 찾아서 누리며 나아간다면, 산을 이루는 일도 한결 쉬우리라.

고전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