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름 명 (口-3) 길장 (長-0) 실제로 실 (宀-11) 짧을 단 (矢-7)

‘문조물’에서 조물주는 스스로 말했다. “사물은 스스로 나고 저절로 변할 뿐”이라고. 하늘이 낳는 것도 아니고 조물주 같은 신적인 존재가 만드는 것은 더더욱 아니라고 조물주 스스로 그렇게 말했다. 물론 조물주가 말한 것이 아니라 ‘나’가 말한 것이겠지만.

그런데 생각해보자. 이규보가 참으로 조물주를 만나 대화를 나누고 이런 글을 썼다고 한다면, 그대는 믿겠는가? 내 생각에는 아마도 열이면 열, 백이면 백 “그런 황당한 말을. 믿지 않아!”라고 말할 것이다. 만약 내가 이규보는 분명히 조물주를 만났다고 끈질기게 주장한다면, 몇 사람은 믿지 않을까? 이렇게 ‘문조물’이라는 글도 있는데.

그런데 참으로 이성적이고 논리적이라는 사람조차 본 적도 없고 들은 적도 없는 것을, 심지어는 황당한 말까지 곧잘 믿는다. 그 믿음에 대해 근거를 대라고, 입증해 보라고 하면, 도리어 화를 내고 심지어는 저주를 퍼붓기도 한다. 왜 인간은 이성을 지녔음에도 비이성적으로 사고하고, 논리를 갖추었음에도 맹목적으로 믿을까?

인간을 두고 이성적 동물이라느니, 호모 파베르(Homo Faber, 도구를 만들 줄 아는 존재)라느니, 호모 루덴스(Homo Ludesn, 놀이하는 인간)라느니 한다. 최근에는 호모 데우스(Homo Deus, 신과 같은 존재)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이렇게 인간을 규정하는 표현이 많다는 것은 인간은 규정짓기 어려운 존재임을 의미한다. 더 냉정하게 말하면, 고귀한 존재임을 나타내려고 이토록 다양한 표현을 쓴다는 것 자체가 인간은 결코 만물의 영장도 고귀한 존재도 아님을, 그보다는 저속하고 하찮은 존재임을 의미하는 것 아닐까?

이규보가 ‘긴 자’에 대해 쓴 ‘長尺銘(장척명)’이 있다. “爾名長尺幾許長? 蠖吾指而量則纔尺有咫. 名長實短得無慙 類爾主人纔西子!”(이명장척기허장? 확오지이량칙재척유지. 명장실단득무참? 류이주인롱서자!)

“네 이름을 장척이라 하니, 길이가 얼마나 되냐? 내 손가락을 굽혀 재면 겨우 한 자 남짓. 이름은 길다 했으나 실제는 짧으니, 부끄럽지 않으냐? 네 주인 농서자(이규보)와 닮았구나!”

고전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