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카로울 리 (刀-5) 그릇 기 (口-13) 나라 방 (邑-4) 더욱 자(水-9) 어두울 혼(日-4)

흔히 ‘문명의 利器(이기)’라는 말을 쓰는데, 利器(이기)란 인간의 삶에 유용하고 편리한 기계나 기구를 뜻한다. 그런데 그런 이로운 기구가 과연 이롭기만 할까? 노자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民多利器, 而邦滋昏”(민다리기, 이방자혼) 즉 “민중에게 이로운 기물이 많을수록 나라는 더욱 어두워진다”는 말에 잘 드러나 있다.

노자는 제후국들 사이에서 전쟁이 끊이지 않았고 전쟁의 규모와 격렬함이 전례 없었던 戰國時代(전국시대, 대략 기원전 403∼221)를 살았다. 그 시대에는 철을 제련하는 기술이 급속도로 발달해서 농기구가 철기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그 덕분에 소가 쟁기를 끌어서 밭을 깊숙이 가는 深耕(심경)이 가능했고 농경이 불가능했던 황무지도 개간할 수 있어서 생산이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그런데 그 결과, 민중이 더 잘살게 되었을까?

전국시대에 秦(진)나라는 商鞅(상앙)의 變法(변법)을 채택해 실행하면서 강대국으로 급성장했는데, 그 기조는 “國之所以興者, 農戰也”(국지소이흥자, 농전야) 즉 “나라를 흥성하게 하는 바탕은 농전이다”라는 것이었다. 農戰(농전)은 농사를 지으면서 싸우는 일을 가리킨다. 농사를 지으면서 전쟁이 나면 동원돼서 싸우는 이들은 당연히 농민이고 민중이다. 진나라에서는 귀족이든 농민이든 그 출신 성분과 상관없이 전쟁에서 공을 세운 자에게 벼슬과 작위를 내렸다. 귀족이 되어 부귀를 누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으므로 민중은 오로지 전쟁이 일어나기만을 기다릴 정도였다.

그런데 누구를 위한 농사이며 전쟁이었던가? 전국시대에 모든 제후가 힘썼던 富國强兵(부국강병) 즉 부유한 나라와 강력한 군사력은 결코 민중을 위한 정책이 아니었다. 그것은 군주의 권력을 유지하고 왕실을 존속시키기 위한 방책이었을 따름이다. 농업 생산의 비약적 증가는 지배층만 배부르게 했고, 끊이지 않는 전쟁 비용으로 충당됐다. 기술의 발달, 利器(이기)의 증가는 인민에게 유익하지 않았다. 권력자들의 탐욕을 채우며 천하를 더욱 어지럽히는데 이용되었을 따름이다. 고전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