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멸 부(宀-9) 말 이을 이(而-0) 좋아할 호(女-3) 예의 례(示-13)
공자는 엄격한 신분제 사회에서 귀족만 배우고 익힐 수 있었던 禮樂(예악)을 신분이나 출신을 따지지 않고 누구에게든 가르쳤던 스승이었다. 동아시아 최초의 사설 학원 원장이었다고도 말할 수 있다. 오늘날과 달리 배우려는 이들이 공자의 집으로 찾아가서 가르침을 받았다는 것이 다를 뿐.
공자는 고기 한 축이라도 들고 온 이라면 다 제자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그의 제자들이 대부분 미천한 신분 출신이었음을 생각해 보면, 사설 학원을 열었음에도 그다지 수지는 맞지 않았을 공산이 크다. 그렇지만 공자에게는 돈 잘 버는 자공이 있었다. 이 자공이 공자 학당을 재정적으로 뒷받침했으리라 여겨진다.
자공은 자신의 부유함에 만족하지 않고 부지런히 찾아와서 배우려 애썼다. 이런 제자를 대견해 하지 않을 스승은 거의 없다. 그런데 어느 날 대뜸 “부유하면서도 교만하지 않게 되었습니다”라고 말을 하니, 스승으로서 자못 기뻤을 것이다. 그러나 공자는 자공이 이에서 더 나아갈 자질과 능력이 있음을 간파하고 있었기에 칭찬을 기대한 자공의 바람과 달리 이렇게 말했다.
“可也. 未若貧而樂, 富而好禮者也.”(가야. 미약빈이락, 부이호례자야) “그 정도면 괜찮기는 하구나. 그러나 가난하면서도 즐길 줄 알고 가멸면서도 예의를 좋아하는 것만은 못하니라.”
富而好禮(부이호례), 부유하면서도 예의를 좋아하는 것! 예의를 좋아한다는 것은 기꺼이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곧고 올바르게 지니려 하며 언제 어디서나 말과 행동을 알맞게 하려고 한다는 뜻이다. 부유한 이가 교만하지 않는 것도 쉽지 않지만, 그것만으로는 참으로 배웠다고 할 수 없으며 덕성을 갖추었다고도 하기 어렵다.
예의를 좋아해야만 가진 재물에 걸맞은 덕성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으며, 시샘과 비난이 아니라 존경을 받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그를 가까이하고 싶어 한다. 공자는 자공이 그런 부자가 되기를 바랐던 것인데, 실제로 자공은 그런 스승의 바람대로 儒者(유자)로서 부끄럽지 않은 富者(부자)로 살았다. 고전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