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를 절(刀-2) 갈차(石-10) 쫄탁(玉-8) 문지를 마(石-11)
참 기이하게도 사람들은 가지면 가질수록 만족을 모르고 더 가지려 하면서 무언가를 배울 때는 아주 작은 것 하나를 아는 것으로도, 아니 설핏 아는 것으로도 만족하며 더 배우려 하지 않는다. 요컨대 만족해도 될 만할 때는 만족하지 못하고 만족해서는 안 될 때는 만족해버린다. 가진 것이 넉넉한 많은 사람이 행복하게 살지 못하는 것도, 나름대로 배웠다고 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문제 하나 해결하지 못해서 힘들어하고 괴로워하는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
공자가 자공에게 “가난하면서도 즐길 줄 알고, 가멸면서도 예의를 좋아하는 것만 못하다”고 말했을 때, 그 말은 가난해도 행복하게 살 수 있으며 부유하다면 그에 걸맞은 덕을 아울러 갖추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물론 그렇게 하려면 여간 어렵지 않다. 그러나 어렵기는 해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어쩌면 생각만 바꾸면 생각보다 쉬울 수 있다. 가령, 내 재산이 얼마나 되는지, 통장에 잔고가 얼마나 있는지를 들여다보듯이 자신의 지혜와 덕성을 그렇게 들여다본다면 말이다.
어쨌든 공자는 부유한 자공에게 작은 깨달음, 자잘한 실천에 만족하지 말라는 뜻에서 그런 말을 해주었는데, 자공도 단박에 그 말뜻을 알아듣고는 이렇게 말했다. “詩云, ‘如切如磋, 如琢如磨!’ 其斯之謂與?”(시운, ‘여절여차, 여탁여마!’ 기사지위여?) “시에서, ‘자른 듯 간 듯, 쫀 듯 다듬은 듯하구나!’라고 하였는데, 이를 말씀하신 겁니까?”
흔히 “切磋琢磨, 大器晩成”(절차탁마, 대기만성)이라 말하는데, 큰 그릇을 이루려면 오랜 시일 동안 쉼이 없이 갈고 닦고 쪼고 다듬어야 한다는 뜻이다. 큰 지혜와 덕성을 갖추는 일이나 큰일을 해내는 일은 그만큼 고된 여정을 거쳐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빈부를 떠나 번듯하고도 떳떳하게 살기 위해서는 그런 여정을 거쳐야 한다. 배우기를 게을리 하지 않으며 작은 앎에 만족하지 않는 것, 그것이 진정한 만족을 얻는 길이다. 그래야 노자가 말했듯이 “可以長久”(가이장구) 곧 “길게 오래갈 수 있다.”
고전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