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돌아올 반(辵-2) 것자(老-5) 길도(辵-9) 움직일 동(力-9)
사마천은 ‘사기’ ‘貨殖列傳(화식열전)’에서 이렇게 말했다. “‘倉廩實而知禮節, 衣食足而知榮辱.’ 禮生於有而廢於無. 故君子富, 好行其德; 小人富, 以適其力.”(‘창름실이지예절, 의식족이지영욕.’ 예생어유이폐어무. 고군자부, 호행기덕; 소인부, 이적기력) “‘곳간이 가득 차야 예의와 절도를 알고, 먹고 입을 것이 넉넉해야 영예와 치욕을 안다’고 했다. 예절은 재물이 있는 데서 나오고 없는 데서 사라진다. 그러므로 군자는 부유하면 그 덕을 즐겨 실천하고, 소인은 부유하면 제 능력에 맞게 일한다.”
사마천은 인간의 특이한 심리나 특별한 행위를 말한 것이 아니다. 매우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정서와 행태를 말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를 돌아보면, 곳간이 가득 찬 사람들이 무례하고 무도하게 갑질을 일삼고, 먹고 입을 것이 넉넉할 뿐만 아니라 권력까지 가진 정치인들이 막말과 악담을 서슴없이 내뱉는다. 이 어찌 된 노릇인가! 사마천이 틀렸는가, 아니면 저들이 사람이 아닌가?
얼마 전,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다뉴브강에서 한국인 여행객들이 탄 유람선이 침몰해 많은 사상자를 냈다. 지금도 실종자를 찾는 수색 작업이 한창이다. 이 참사가 슬프고 안타까워서 헝가리 시민들도 애도하는데, 오히려 국내에서는 ‘보험금’을 운운하며 ‘보험금 액수’를 논하는 언론 기사들이 연달아 나왔다. 세월호 참사 때도 그런 일이 있었다. 왜 이 땅에서 ‘記者(기자)’를 ‘기레기’라 부르는지, 그렇게 불러도 마땅한지를 스스로 입증했다고 할까?
사마천도 기자였다. 그는 역사의 기록자요 당대의 군자로서 기자란 냉철한 기록자이면서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과 이해를 아울러 지녀야 함을 보여주었다. 무례하고 무도한 기사를 쓰는 자가 어찌 참된 기자일 수 있겠는가? 최소한의 예의조차 없는데. 그토록 무례하고 무도한 것이 가난해서일까? 아니다. 덕이 없어서다. 공감하는 능력이 모자라서다. 그 대가로 ‘기레기’ 소리를 듣는 것이다. 노자가 말했다. “返也者, 道動也.”(반야자, 도동야) “되돌아오는 것이 도의 움직임이다.”
고전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