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 차(止-2) 일어날 기(走-3) 그러므로 고(
攵-5) 저것 피(
彳-5)
다음은 ‘죽간본’ 19-1이다. “返也者, 道動也. 弱也者, 道之用也.”(반야자, 도동야. 약야자, 도지용야) “되돌아오는 것이야말로 도의 움직임이다. 여린 것이야말로 도의 쓰임이다.”
‘返(반)’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되돌아온다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돌고 돈다는 뜻이다. 되돌아오는 것도 도의 움직임이고, 돌고 도는 것도 도의 움직임이다. 노자는 한 문장 안에 도의 속성이자 작용 두 가지를 한꺼번에 담아낸 셈이다. 물론 여기서는 그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서 풀이로 삼았지만.
되돌아온다고 해서 반드시 간 것과 똑같은 것이 되돌아온다는 뜻은 아니다. 간 것이 있으면 그에 상응하는 것이 되돌아온다는 뜻이다. 돈을 건네고 물건을 사는 것, 내가 준 선물이 고마워 나에게 보답을 하는 것, 내가 기울인 노력에 걸맞은 보상이 주어지는 것, 내가 저지른 잘못에 대해 처벌을 받는 것 따위가 모두 되돌아옴이라는 도의 움직임이다. 이것이 自然(자연)이요 도의 법칙이며, 인간사 또한 이 법칙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 ‘되돌아옴’이라는 도의 움직임을 훨씬 더 정교하고 치밀하게 풀어낸 것이 불교의 緣起法(연기법)이다. ‘雜阿含經(잡아함경)’에 이를 간결하게 표현한 문장이 있다. “此有故彼有, 此起故彼起.”(차유고피유, 차기고피기)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므로 저것이 일어난다.” 물론 불교의 연기법은 존재하는 어떤 것도 실체를 갖지 않는다는 諸法無我(제법무아)를 바탕으로 하므로 노자가 말한 바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도의 작용이 그러하다는 점에서는 다를 게 없다. 이렇게 이것과 저것은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 긴밀하게 이어져 있다. 우리의 감각에 쉽게 포착되지 않기 때문에 전혀 그렇지 않은 것처럼 여겨질 뿐이다. 또 그렇게 여기고 사는 것이 한결 편안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우리의 괴로움, 번뇌는 모두 그런 실상, 되돌아오는 것이 도의 움직임이라는 법칙을 깨닫지 못한 데서 오기 때문이다. 고전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