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법 역(日-12) 이치 수(夂-11) 있을 재(土-3) 너이(爻(-10) 몸궁(身-3)
역법의 曆(력)과 통하는 글자가 역사의 歷(력)이다. 두 글자 모두 ‘다스리다’는 뜻의 厤(력)을 바탕으로 만든 것이며, 실제로도 통용되었다. 역법은 해와 달, 별 따위의 자취를 좇아서 자연의 가락을 파악한 것이라면, 역사는 인간의 자취를 좇아서 그 법칙과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자연이 돌고 도는 것처럼 인간사 또한 돌고 돈다. 물론 역사는 똑같은 사람들이 거듭 태어나 똑같은 삶을 되풀이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다른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수백 년 또는 수천 년이라는 세월의 틈이 있음에도 서로 비슷한 행위를 되풀이하거나 유사한 자취를 거듭 보여준다는 점에서 역사는 역법과 자못 닮았다. 그래서 역사는 자연의 투영이다. ‘논어’ ‘堯曰(요왈)’에 堯(요)가 舜(순)에게 들려주었다는 말이 실려 있다. “天之曆數在爾躬.”(천지역수재이궁) “하늘의 역수가 그대 몸에 있다.”
曆數(력수)는 천체의 운행이나 돌고 도는 계절의 순서를 뜻하며, 이처럼 돌고 돌거나 오고가는 운수를 뜻하기도 한다. 요의 말은 사람의 몸 또한 자연의 산물이므로 거기에 천지의 운행 법칙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뜻이고, 그러하므로 사람도 자연의 법칙, 도리, 이치에 따라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연의 법칙이 사람의 몸에 있듯이 운수 즉 사람의 노력과는 상관이 없다고 여겨지는 운수도 실제로는 사람에게 있다, 사람에게 달려 있는 뜻도 담겨 있다.
자연과 문명은 별개로 존재하지 않는다. 과거와 미래 또한 마찬가지다. 별개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매우 긴밀하게 이어져 있다. 자연의 강력한 힘에 맞서기 위해서거나 그 힘을 이용하기 위해서거나 간에 문명은 자연으로 말미암아 탄생하고 변화해 왔다. 과거의 자취가 쌓이고 쌓여서 현재를 만들었고, 이 현재가 또다시 미래를 낳는다.
자연을 닮지 않은 문명 없고, 과거를 닮지 않은 현재가 없으며, 현재를 닮지 않은 미래도 없다. 다르게 보인다고 해서 아주 다르고 전혀 상관이 없는 게 아니다. 복잡다단하게 얽혀 있다.
고전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