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닐 불(一-3) 나갈 출(凵-3) 문호(戶-0) 알지(矢-3)
천지도 불균형을 바로잡기 위한 처방을, 센 처방이든 극약 처방이든 똑같은 처방을 오래 계속 쓰지 않는데, 사람은 그렇지 않다.천지는 이미 처방한 것이 통하지 않으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이미 처방한 것으로 말미암아 병증이 또 달라졌음을, 같은 처방을 계속 해봐야 耐性(내성)이 생겨서 더욱더 효과가 없을 뿐만 아니라 상황을 더 악화시킬 수 있음을 아주 잘 안다.
그래서 똑같은 처방을 거듭 쓰지도 않으며 오래 쓰지도 않는다. 아무리 효과가 있더라도.
그런데 인간은 효과가 있든 없든 같은 처방을 계속 고집한다. 그 처방도 사람마다 다르다. 제각각 자신의 처방이 가장 적절하고 효과적이라면서 우긴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것이 諸子百家(제자백가)요 百花齊放(백화제방)이며, 불교니 기독교니 이슬람교니 하는 종교이다.
왜 그토록 많은 처방이 존재하는지를 잠시라도 생각해 본다면, 천지가 같은 처방을 오래 쓰지 않은 까닭을 확연하게 느끼고 알 텐데.
너른 땅을 밟고 살지만 인간의 생각과 사유는 그리 넓지 못하다. 탁 트인 하늘을 이고 살지만 그 마음은 결코 트여 있지 못하다. 오히려 좁디좁은데다 꽉 막혀 있다. 좀 배워서 무얼 아는 수준이 됐다 싶으면, 오히려 졸아들어 있다. 거듭 불에 올려둔 찌개처럼. 그리하여 천지가 쏟아낸 그 많은 것 가운데 하나, 萬物(만물) 가운데 一物(일물)에 지나지 않거늘 逸物(일물)이라 자부하면서 아집과 독선에 빠져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한다. 어디 그뿐인가. 끊임없이 일어나는 私慾(사욕)에 맥없이 주저 않고, 도덕이니 윤리니 운운하느라 僞善(위선)의 탈을 쓰고 있는 줄도, 아니 그 탈이 제 살처럼 되어버린 줄도 모른다.
어쩌면 인간은 그 많은 지식과 말의 감옥에 갇혀버렸는지도 모른다. 온갖 처방전을 다 들여다보지만, 정작 현실의 문제, 실상은 돌아다보려고도 않는다.
그럼에도 “不出戶, 知天下; 不闚牖, 見天道”(불출호, 지천하; 불규유, 견천도) 곧 “문을 나서지 않아도 천하를 알고, 창을 내다보지 않아도 천도를 보네”라는 노자의 말을 뇌까리는 꼴이라니.
고전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