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만할 교(馬-12) 군사 병(八-5) 의지(
丿-3) 꾀계(言-2)
桂陵(계릉)의 전투가 있은 지 13년 뒤인 기원전 341년, 위나라 惠王(혜왕)은 방연을 보내 韓(한)나라를 치게 했다. 한나라에서는 齊(제)나라에 사자를 보내 구원을 청했다. 제나라 위왕은 대신들을 모아 대책을 상의했다. 일찍 구해줄 것인가 늦게 구해줄 것인가로 논란이 분분했다. 위왕이 손빈에게 묻자, 손빈은 이렇게 대답했다. “한나라와 위나라 두 군사가 아직 피폐하지 않은 상황에서 구원에 나서면 한나라는 편하게 전쟁을 구경만 하게 되고, 우리는 그들을 대신해 위험한 전쟁을 하게 되는 셈입니다. 그러니 우선 한나라에 구원해준다고 말해 한나라를 안심시킵시오. 그러면 한나라는 우리를 믿고 전력을 다해 위나라 군사를 막을 것입니다. 위나라 역시 한나라를 멸망시키려고 힘을 다해 싸울 것입니다. 그리하여 한나라가 패망의 위기에 몰려 급히 구원을 청할 때에 돕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한나라와 아주 가까워지고 이미 지친 위나라 군사도 쉽게 물리칠 수 있습니다. 이것으로 커다란 이익과 높은 명성을 동시에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나라 군사는 전력을 다해 싸우지 않았고, 그 때문에 위나라 군사를 도저히 감당하지 못해 다섯 번 싸워 다섯 번 모두 패했다. 결국 다급해진 한나라는 다시 제나라에 사자를 보냈다. 그제야 위왕은 전기를 장군으로 삼아 내보냈다. 이때도 손빈은 위나라 수도 大梁(대량)으로 쳐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전기는 곧장 대량으로 진격했다. 그 소식을 들은 방연은 곧바로 군사를 이끌고 대량으로 달려갔다. 제나라 군사는 이미 위나라 국내에 들어가 있었다. 방연의 군사가 돌아오자, 손빈이 전기에게 말했다. “위나라 병사들은 본래 사납고 용맹해 제나라를 가벼이 보고 제나라 군사를 겁쟁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적을 얕보면 반드시 패하게 마련입니다. 우리 군사가 짐짓 약한 모습을 보인다면, 적은 더욱 교만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 적을 유인한 뒤에 계책을 써서 친다면, 단번에 승리할 수 있습니다.” 이는 ‘驕兵之計(교병지계)’ 곧 적을 교만하게 만든 뒤에 치는 계책이다. 고전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