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마(馬-0) 언덕 릉(阜-8) 의지(
丿-3) 싸움 역(
彳-4)
孫臏(손빈)은 병사들에게 馬陵(마릉)에서 가장 큰 나무 하나만 남겨두고 나머지 나무를 모두 베어내게 했다. 이어 그 나무의 가지를 다 치고 껍질을 모두 벗겨내도록 했다.
허연 나무의 몸통에 손빈은 이렇게 써 놓았다. “龐涓死于此樹之下!”(방연사우차수지하) “방연은 이 나무 아래서 죽는다!”
그리고 활을 잘 쏘는 군사를 뽑아 쇠뇌 1만 개를 준비해 길 양쪽에 매복시키고는 이렇게 말했다. “暮見火擧而俱發!”(모견화거이구발) “어두워진 뒤에 불빛이 일어나면 일제히 쏘도록 하라!”
과연 급히 추격하던 방연의 군사들은 밤이 되어서야 마릉에 이르렀다. 껍질이 벗겨진 나무 하나가 우뚝 솟아 있었고, 글자가 보였으나 어렴풋했다. 방연이 불을 밝혀 비추게 했다. 방연이 채 읽기도 전에 제나라 군사들이 일제히 쇠뇌를 쏘았다. 혼란에 빠진 위나라 군사는 허둥대며 흩어졌다. 방연은 스스로 지혜가 다하고 싸움에서 졌다는 것을 알고 이렇게 말했다. “遂成豎子之名!”(수성수자지명) “드디어 그 어린놈이 명성을 떨치게 만들었구나!”
그러고는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 승세를 탄 제나라 군사는 위나라 군대를 대파하고 위나라 태자 신(申)을 포로로 잡았다. 이 전투를 ‘馬陵之役(마릉지역)’이라 한다. 이 일로 손빈은 그 명성을 천하에 떨쳤으며, 그의 병법도 세상에 전해지게 되었다.
1920년 6월 4일, 독립군 1개 소대가 일본군 국경초소를 습격하여 격파한 것에서 일본군 유인 작전은 시작되었다. 6월 6일 오전에 한 차례 매복 공격으로 일본군 60여 명을 사살한 뒤, 대오를 정비한 일본군 주력 부대를 다시 봉오동 상촌으로 유인했다. 이윽고 6월 7일, 독립군의 작전대로 일본군은 마릉과 같은 봉오동으로 들어섰다. 매복해 있던 독립군은 홍범도 장군의 명령에 따라 일제히 사격했다. 일본 정부가 한국을 압박하기 위해 수출 규제와 화이트리스트 배제를 선언했다가 한국 국민한테서 ‘일본 불매 운동’이라는 된서리를 맞고 있는 상황은 마치 저 ‘봉오동 전투’의 재현인 듯한데, 그렇지 않은가? 고전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