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노릇할 왕(玉-0)같을 약(艸-5)쉬울 이(日-4)그러할 연(火-8)
맹자가 “제나라를 가지고 왕도를 펴는 건 손바닥 뒤집는 것과 같이 쉬운 일이었다”고 말하자, 제자인 공손추는 당연히 의구심이 일었다. 아무리 존경하는 스승의 말이지만, 사리에 맞아야 수긍할 수 있지 않은가. 공손추로서는 자세히 캐어묻지 않을 수 없었다.
“若是, 則弟子之惑滋甚. 且以文王之德, 百年而後崩, 猶未洽於天下; 武王·周公繼之, 然後大行. 今言王若易然, 則文王不足法與?”(약시, 즉제자지혹자심. 차이문왕지덕, 백년이후붕, 유미흡어천하; 무왕·주공계지, 연후대행. 금언왕약이연, 즉문왕불족법여?) “그게 그렇다면 이 제자는 더욱더 헷갈립니다. 게다가 문왕은 덕으로써 다스리며 백여 년을 산 뒤에야 죽었음에도 여전히 천하는 그 덕에 젖지 못했고, 무왕과 주공이 이은 뒤에야 그 덕화가 널리 행해졌습니다. 그런데 이제 왕도를 펴는 일이 아주 쉬운 듯이 말씀하시니, 그렇다면 문왕은 본받을 만하지 못합니까?” 문왕과 무왕은 부자지간으로, 周(주) 왕조를 연 왕들이었다. 먼저 문왕이 어진 정치를 펴서 널리 제후들의 신망을 얻었는데, 공손추의 말마따나 덕으로써 다스리며 백여 년을 산 뒤에야 죽었으나 천하를 얻지는 못했다. 商(상) 왕조 곧 殷(은)의 紂王(주왕)이 비록 포악무도했다고는 하나, 수백 년 동안 중원을 지배해 온 商(상)을 따르는 제후들이 여전히 많았기 때문이다. 무왕이 오래도록 심사숙고한 뒤에 동조하는 제후들의 도움을 받아 강산을 피로 물들인 뒤에야 주왕을 죽이고 상을 멸망시킬 수 있었다.
무왕이 2년 뒤에 죽자 무왕의 아우 주공이 어린 成王(성왕)을 대신해 섭정했다. 이에 주공의 아우들인 관숙과 채숙이 주왕의 아들 武庚(무경)과 함께 반란을 일으켰다. 주공은 무경과 관숙을 죽이고 채숙은 멀리 추방했다. 은의 유민을 모두 거두어 衛(위) 땅에서 살게 하고 아우인 康叔(강숙)이 다스리게 했다. 그렇게 잡도리한 지 3년이 지나서야 간신히 안정을 찾았다. 이렇게 성군으로 일컬어지는 문왕과 무왕, 불세출의 영웅 주공 등 세 부자가 전력을 다했어도 왕도를 폈다고 하기 어려운데, 어찌 쉽다고 말하는가. 고전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