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랠 구(丿-2)곧즉(刀-7)어려울 난(隹-11)바꿀 변(言-16)
탁월한 성군 문왕이 백여 년을 살면서 어진 정치를 폈음에도 왕도는 천하를 적시지 못했다. 그런데 맹자는 왕도를 펴는 일이 손바닥 뒤집는 것과 같이 쉽다고 했다. 그가 문왕을 능가한단 말인가? 맹자는 먼저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文王何可當也? 由湯至於武丁, 聖賢之君六七作, 天下歸殷久矣. 久則難變也. 武丁朝諸侯, 有天下, 猶運之掌也.”(문왕하가당야? 유탕지어무정, 성현지군육칠작, 천하귀은구의. 구즉난변야. 무정조제후, 유천하, 유운지장야) “어찌 내가 문왕과 맞먹을 수 있겠느냐? 탕에서 무정에 이르기까지 거룩하거나 현명한 임금이 예닐곱 명 나왔고 또 천하가 은나라로 돌아간 지도 오래되었다. 오래되면 바꾸기가 어렵다. 그래서 무정이 제후들의 조회를 받고 천하를 차지하는 일은 손바닥 위에서 움직이는 것처럼 쉬웠다.”
은나라 곧 상 왕조는 초기에 성군과 현군이 연이어 등장하여 천하를 안정되게 통치하며 민심을 얻었다. 그 뒤에 昏君(혼군)들이 거듭 나타나서 정치는 혼란에 빠지고 왕조는 쇠약해지는 지경이 되었으나, 멸망에 이르지는 않았다. 초기의 선정(善政)이 오래 이어져 뿌리를 내렸기 때문이니, 맹자는 이를 두고 “久則難變也”(구즉난변야) 즉 “오래되면 바꾸기가 어렵다”고 표현했다. 이윽고 武丁(무정)이 즉위해서 현인 傅說(부열)을 등용해 정치를 바로잡고 덕을 베풀어 민심을 다시 얻고 천하를 안정시켰는데, 맹자는 그 일이 “손바닥 위에서 움직이는 것처럼 쉬웠다”고 표현했다. 천하가 간절히 바라는 일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무정을 이은 군주들이 또다시 정치를 어지럽혔고, 백여 년 뒤 폭군 紂王(주왕)이 나타났다.
맹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 무정으로부터 紂(주)까지는 그리 오랜 세월이 아니었으므로 오래된 가문과 전해오던 습속, 선인이 남긴 풍습과 뛰어난 정치가 여전히 남아 있었다. 또 微子(미자)·微仲(미중)·왕자 比干(비간)·箕子(기자)·膠鬲(교격) 등의 신하는 모두 현명한 사람이었는데, 그들이 서로 함께하며 임금을 도왔다. 그래서 오랜 뒤에야 나라를 잃었던 것이다.”
고전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