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무(毋-0) 할위(爪-8) 범호(
虍-2) 붙일 부(人-10) 날개 익(羽-11)
왜 한국의 검찰은 개혁의 대상이 되었는가? 정의를 세워 사회의 혼란을 막으라고 준 위세와 권세를 가지고 오히려 선량한 시민을 두려워하게 만들고 사회를 어지럽히는 데에 힘썼기 때문이다. 그들이 그렇게 하게 된 까닭은 무엇인가? 법을 집행하는 데서 거의 全權(전권)을 쥔 그들의 專橫(전횡)을 막을 장치가 없어서였다. 이보다 더 매력적인 유혹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지 않아도 주어진 권력이 막강해서 정의니 인권이니 공익이니 하는 것을 置之度外(치지도외)하고 범처럼 날뛸 태세인데, 牽制(견제)하거나 制御(제어)할 장치가 없다니! 그야말로 날개 단 범이 아닌가! 공권력을 제한하고 통제함으로써 자의적인 지배를 배격하려고 법에 의한 통치, 법에 의한 지배를 원리로 하는 것이 法治主義(법치주의)다. 민주주의는 이 법치주의 위에서 구현된다. 법치주의를 실현하고 민주주의를 구현하기 위해 검찰에게 권력을 준 것인데, 이를 오히려 법치를 농락하는 데 쓰는 꼴이라니.
‘한비자’ ‘難勢(난세)’에 나온다. “夫勢者, 便治而利亂者也. 故周書曰: ‘毋爲虎傅翼, 將飛入邑, 擇人而食之.’ 夫乘不肖人於勢, 是爲虎傅翼也.”(부세자, 편치이리란자야. 고주서왈: ‘무위호부익, 장비입읍, 택인이식지.’ 부승불초인어세, 시위호부익야) “무릇 위세는 다스리는 데에 편리하기는 하지만 어지럽히는 데에도 유리하다. 그래서 ‘주서’에서도 ‘범에게 날개를 달아줘서는 안 된다. 날개를 달아주면 마을로 날아들어 가서 사람을 골라 잡아먹는다’고 했다. 못난 자가 위세를 타게 하는 것은 범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것과 같다.”
‘難勢(난세)’란 권세를 잡도리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특히 범을 다스리기 어려운 것처럼 권세를 가진 자를 제어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위에서 말한 못난 자는 곧 간교하거나 음흉한 자인데, 그런 자가 부리는 권세는 더욱더 제어하기 어렵다. 무슨 짓이나 할 것이므로. 하물며 그런 자에게 날개를 달아준다면, 대체 무엇으로 제어할 수 있단 말인가? 그쯤 되면, 難勢(난세)는 곧장 亂世(난세)로 突變(돌변)하리라. 고전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