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스로 자(自-0) 강해질 강(弓-9) 아닐 불(一-3) 쉴식(心-6)
노자는 ‘重積德(중적덕)’ 곧 ‘거듭 덕을 쌓는 일’을 말했다. 여기서 ‘重(중)’은 거듭, 거듭하다는 뜻인데, 그저 되풀이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 아니다. ‘중’에는 또 가볍지 않고 무게 있게 행동하다는 뜻도 있다. 따라서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고 이치로써 따지며 올바르게 생각하고 드레지게 행동하려 애쓰는 일이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덕을, 참된 힘을 기를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중’을 잘 표현한 말이 ‘自强不息(자강불식)’이다.
‘주역’의 ‘乾卦(건괘)’에 대해 ‘象傳(상전)’에서는 이렇게 풀이했다. “天行健, 君子以自强不息.”(천행건, 군자이자강불식) “하늘의 운행은 굳세니, 군자는 이를 본받아 스스로 강해지고자 쉬지 않고 힘쓴다.” 군자가 본받을 것은 ‘天行(천행)’ 곧 ‘하늘의 운행’이라 했다. 하늘의 운행에 대해서는 우리가 전부는 알지 못해도 해가 뜨고 지는 일이나 계절이 바뀌는 일을 통해 쉼이 없고 게으름도 없다는 것은 경험으로 알고 있다. 그런 하늘의 운행처럼 쉬지 않고 힘써야만 비로소 강해진다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강해지기를 바란다. 아마도 태어나기를 다른 짐승보다 강하지 않기에, 아니 오히려 허약하기 그지없기에 더욱 그런 열망을 갖지 않았을까? 아득한 옛날, 인류가 별다른 재주나 도구도 없이 거친 자연 속에서 사나운 짐승들의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에 끊임없이 위협받으며 살 때부터 강해지려는 욕망은 매우 컸으리라. 그 욕망이 어느새 짐승이나 자연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공존과 공생으로 유지되는 사회와 국가를 지배하고 통제하려는 욕망으로 변질된 것이리라.
그럼에도 강해지려는 인간의 욕망이 아주 길을 잃은 것은 아니다. ‘하늘의 운행’을 본받으려 애쓰는 군자들이 있기에. 희한하게도 세상을 아귀다툼의 소굴로 만들려는 간특하고 음흉한 자들은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그 아귀다툼을 끝장내고 대명천지로 전환하려는 군자들 또한 소수다. 어쩌면 인류는 또 세상은 그 둘의 사뭇 다른 욕망과 끝없는 힘겨루기 속에서 연명해가는 지도 모르겠다.
고전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