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닦을 수(人-8) 말사(辛-12) 세울 립(立-0) 성스러울 성(言-7)
이왕 ‘주역’을 들먹였으니, 계속해서 더 보자. ‘구삼’에 대해 “君子終日乾乾, 夕惕若, 厲, 无咎.”(군자종일건건, 석척약, 려, 무구) 곧 “군자가 온종일 힘쓰고 힘쓰면서 저녁까지 두려워한다면 위태롭기는 해도 허물이 없다”고 설명했는데, 이에 대해 공자가 한 말이 또 있다. ‘주역’을 풀이한 ‘문언전(文言傳)’에 나온다.
“君子進德修業, 忠信, 所以進德也; 修辭立其誠, 所以居業也. 知至至之, 可與幾也; 知終終之, 可與存義也.”(군자진덕수업, 충신, 소이진덕야; 수사립기성, 소이거업야. 지지지지, 가여기야; 지종종지, 가여존의야) “군자가 덕을 갖추는 데 힘써 공업을 닦으니, 참됨과 미쁨이 덕을 갖추는 바탕이요 말을 닦아 성스러움을 세우는 것이 공업을 쌓는 토대다. 지극함을 알아서 지극하게 하므로 미묘한 낌새를 알아챌 수 있고, 매조지를 알아서 매조지니 올바름을 간직할 수 있다.”
‘修辭立其誠’(수사립기성) 곧 ‘말을 닦아 성스러움을 세운다’는 표현은 자칫 오해를 낳기 쉽다. 흔히 修辭(수사)라 하면 말을 다듬고 꾸며서 아름답게 보이려는 짓으로, 진실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역’에서는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니다. 말만큼 쉽게 하면서도 알맞게 하거나 행동과 일치시키기 어려운 것도 없다. 말이라고 다 말이 아닐뿐더러 참되지 않은 말은 그 자체로 허물이면서 자신을 막다른 곳으로 또는 재앙으로 내몰기도 한다. 그러니 말을 닦지 않을 수 있겠는가?
‘논어’ ‘衛靈公(위령공)’에 공자가 말에 대해 말한 말이 나온다. “可與言, 而不與之言, 失人; 不可與言, 而與之言, 失言. 知者不失人, 亦不失言.”(가여언, 이불여지언, 실인; 불가여언, 이여지언, 실언. 지자불실인, 역불실언) “말을 나눌 수 있는데도 말을 나누지 않으면 사람을 잃고, 말을 나눌 수 없는데 말을 나누면 말을 잃는다. 참으로 아는 자는 사람을 잃지 않고 말도 잃지 않는다.” 따라서 말을 닦아서 말도 잃지 않고 사람도 잃지 않을 수 있다면, 誠人(성인)이 아니겠는가? 誠人(성인)은 곧 聖人(성인)이다.
고전학자